기적을 꿈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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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길 끝, 먼지 쌓인 폐가 담벼락 아래는 동네 꼬마들의 비밀 아지트였다. 이름하여 ‘꿈꾸는 다락방’. 실제 다락방은 아니었지만, 낡은 평상 하나와 비뚤어진 나무 상자 몇 개가 전부인 그곳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수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길 좋아하는 민준이, 공상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지우, 그리고 조금 느리지만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하늘이까지. 네 명의 아이들은 매일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그곳에 모였다.

 

“어른들은 맨날 안 된대.”

 

민준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손에는 구겨진 악보가 들려 있었다. 동네 노래자랑 예선에서 또 떨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심사위원 아저씨는 ‘아직 어리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그래. 그림 그려서 뭐 먹고 살 거냐고.”

 

수현이가 스케치북 귀퉁이에 작은 꽃을 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붓 대신 연필로 그리는 그림은 색깔이 없어 조금 슬퍼 보였다.

 

“내 소설은… 맨날 유치하대.”

 

지우도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공책 속 이야기들은 먼지처럼 쌓여만 갔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늘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잖아. 우리끼리.”

 

 

그 말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늘 조용했던 하늘이의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우리끼리 뭘?”

민준이가 되물었다.

 

“기적 같은 거.”

 

하늘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까만 하늘에는 별 몇 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적?”

“응. 어른들은 맨날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짜 멋진 걸 해내면… 그게 기적이 아닐까?”

 

아이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각자의 머릿속에 ‘진짜 멋진 일’이 무엇일까 그려보는 듯했다.

 

“좋아! 그럼 우리, 저기 버려진 공터 있잖아. 거기다 비밀 정원을 만드는 건 어때?”

수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제안했다. 동네 구석, 쓰레기만 나뒹굴던 공터는 아이들의 눈에도 늘 흉물스러웠다.

 

“정원? 와, 좋다! 그럼 거기서 내가 노래 부르고!”

민준이가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나는… 우리 정원 이야기를 쓸래! ‘마법 정원의 비밀’!”

지우도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하늘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날부터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작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계획을 듣고 코웃음 쳤다.

 

“애들이 뭘 한다고. 흙장난이나 치겠지.”

“위험하게 공터엔 왜 들어가? 다치면 어쩌려고.”

“공부나 해, 공부.”

어른들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아이들의 마음에 박혔다. 그래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용돈을 탈탈 털어 작은 모종 몇 개를 샀고, 동네를 돌며 버려진 화분이나 깨진 타일 조각을 주워 모았다. 민준이는 노래 연습 대신 삽질을 했고, 수현이는 그림 그리는 섬세한 손으로 잡초를 뽑았다. 지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매일 기록했고, 하늘이는 작은 씨앗 하나하나에 정성껏 물을 주었다.

 

손은 흙투성이가 되고 옷은 땀으로 젖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고,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함께 땀 흘리는 시간들은 고되기보다 즐거웠다.

 

“야, 저기 봐! 우리가 심은 거 싹 났다!”

 

어느 날 아침, 민준이가 소리쳤다. 작은 연둣빛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 작은 생명은 아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꿈꾸는 정원’은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다. 버려진 타이어는 알록달록 화분이 되었고, 깨진 유리 조각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자이크 벽 장식이 되었다. 아이들이 주워온 돌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그곳은 더 이상 버려진 공터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꿈과 땀으로 가꿔진 작은 낙원이었다.

 

하지만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동네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공터를 밀고 주차장을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른들은 ‘잘됐다’며 수군거렸지만, 아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안 돼! 우리 정원…!”

 

수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민준이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고, 지우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하늘이는 아무 말 없이 떨리는 손으로 작은 새싹을 어루만졌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 앞에 아이들은 절망했다.

 

“이제… 끝인가 봐.”

 

민준이가 힘없이 말했다.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어른들의 말처럼,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포기해야 하는 걸까. 무거운 침묵이 아이들을 짓눌렀다.

 

그때, 늘 조용히 아이들을 지켜보던 동네 문방구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매일 지켜보고 있었다.

 

“힘들지?”

할아버지는 아이들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포기하지 마라. 너희들이 만든 저 작은 정원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지, 너희는 아직 모를 게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다시 눈빛을 빛냈다. 그래,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기로 했다. 정원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어른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수현이는 밤새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고, 민준이는 정원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지우는 ‘마법 정원의 비밀’ 이야기를 완성했고, 하늘이는 서툰 글씨로 어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우리가 만든 작은 정원을 지켜주세요. 이곳은 우리의 꿈이에요.’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용기를 내어 동네 어른들 앞에 섰다. 수현이의 그림, 민준이의 노래, 지우의 이야기, 그리고 하늘이의 진심 어린 편지. 아이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간절한 눈빛 앞에서 어른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어른들도, 아이들이 밤낮으로 땀 흘려 가꾼 정원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였던 곳이 형형색색 꽃과 푸른 식물로 가득 찬 작은 쉼터로 변한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저 녀석들이… 저걸 다 했다고?”

“세상에, 이렇게 예쁜 곳이 될 줄이야.”

 

웅성거림 속에서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아이들의 진심이, 그 작은 손들이 만들어낸 기적이 어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결국, 공터 개발 계획은 잠시 보류되었다. 대신 ‘꿈꾸는 정원’은 동네 사람 모두가 함께 가꾸는 작은 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꽃을 심고, 물을 주고, 정원 한편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는 민준이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우의 ‘마법 정원의 비밀’ 이야기는 동네 도서관에 비치되었고, 수현이의 그림은 정원 입구에 자랑스럽게 걸렸다.

 

어른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순수한 믿음 하나로 결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해 질 녘, ‘꿈꾸는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행복이 가득했다. 하늘이가 속삭였다.

 

“우리가 해냈어.”

 

아이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저녁 바람을 타고 동네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며,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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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1. 집단 효능감 (Collective Efficacy): 소설 속 아이들은 처음에는 각자의 꿈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어른들의 부정적인 평가에 위축됩니다. 하지만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아지트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기적을 만들자'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버려진 공터를 '꿈꾸는 정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함께 땀 흘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목표를 집단 전체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성취해나가는 집단 효능감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터에 처음 새싹이 돋아났을 때 아이들이 함께 환호하는 장면은 이러한 집단 효능감이 강화되는 순간을 잘 보여줍니다.
  2. 내재적 동기 (Intrinsic Motivation): 아이들은 정원을 가꾸는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어른들의 비웃음이나 '공부나 하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용돈을 모으고 시간을 쪼개어 정원을 가꾸는 모습은 외부적인 보상(칭찬, 인정 등)보다는 활동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 즉 내재적 동기에 의해 행동이 촉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민준이가 노래 연습 대신 삽질을 하고, 수현이가 그림 그리는 손으로 잡초를 뽑는 등, 자신의 원래 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활동에도 기꺼이 참여하는 것은 '꿈꾸는 정원'이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즐기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피그말리온 효과 (Pygmalion Effect) / 자기 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하늘이의 "우리는 할 수 있잖아. 우리끼리. 기적 같은 거."라는 말은 아이들 마음에 긍정적인 기대를 심어주는 시작점이 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에 옮겼고,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꿈꾸는 정원'이라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긍정적인 기대나 믿음이 실제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피그말리온 효과, 또는 스스로의 예언대로 행동하여 결국 그 예언을 실현시키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른들의 "애들이 뭘 한다고"라는 부정적인 기대(골렘 효과)를 아이들이 극복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현실로 증명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4. 회복탄력성 (Resilience): 아이들은 어른들의 비웃음, 자원 부족,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터 개발 계획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합니다. 특히 개발 계획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들은 크게 절망하고 포기 직전까지 갑니다. 하지만 문방구 할아버지의 격려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기 상황 앞에서 단순히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 노래, 글, 편지 등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하여 어른들을 설득하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이러한 과정은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 즉 회복탄력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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