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으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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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께 조용히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아이의 손은 잔뜩 주름진 종이를 꼭 쥐고 있었고, 조금은 긴장한 듯 보였다.

 

“선생님, 이걸 읽어주세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이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를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 엄마가 많이 힘들어해요."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소연이었다. 늘 밝고 씩씩한 아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선생님은 눈을 들어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아, 엄마가 무슨 일로 힘드신 것 같니?"

 

소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시는데, 요즘은 더 피곤해 보여요. 밥도 잘 못 드시고, 가끔 울기도 해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마음이 아팠다. 소연의 엄마는 마을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혼자서 빵을 굽고, 가게를 지키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소연아, 혹시 엄마를 위해 우리가 같이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소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군가 따뜻한 말을 해주면 하루가 덜 힘들 것 같다'고요."

 

선생님은 소연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엄마에게 따뜻한 편지를 써볼까?"

소연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소연은 조그만 손으로 편지를 썼다.

 

"엄마, 저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빵을 만들고 힘들어도 저를 위해 웃어주셔서 고마워요.
엄마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 곁에 있을게요."

 

 

그 편지는 작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소연은 몰래 엄마의 빵집 카운터 위에 편지를 올려두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빵을 굽느라 피곤한 얼굴로 일어나 가게를 열었다. 손에 가루가 묻은 채, 카운터를 정리하다가 작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빵 주문서인 줄 알고 무심코 펼쳤지만, 익숙한 글씨를 보자마자 손이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엄마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요."

 

엄마는 편지를 가만히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날, 엄마의 빵집에서는 유난히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날 저녁, 소연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뭔가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엄마는 소연을 바라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연아, 혹시 이 편지... 네가 쓴 거니?"

 

소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그 작은 고개 끄덕임을 보자마자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가 이렇게 예쁜 편지를 받아본 건 처음이야."

소연은 엄마 품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순간, 자신이 그동안 너무 많은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연은 그저 엄마가 웃어주길 바랐던 거였다.

그날 이후, 소연의 편지는 한 장에서 두 장으로, 두 장에서 세 장으로 늘어났다.

 

"엄마, 오늘도 화이팅이에요!"
"엄마, 빵집에서 나는 냄새가 제일 좋아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빵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엄마는 그 편지들을 하나하나 간직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빵집 한쪽 벽에 조그만 코르크보드를 달았다.

 

 

"작은 손으로 쓰는 사랑의 편지들"

 

처음에는 소연의 편지만 붙어 있었지만, 어느새 빵집을 찾는 손님들도 하나둘씩 작은 쪽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여기 빵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항상 따뜻한 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이 빵집 덕분에 하루가 행복해집니다."

 

빵집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빵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따뜻한 마음을 나누러 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집은 마을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가 되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빵집을 찾아왔다.

그 아이는 소연과 비슷한 또래였지만, 얼굴에는 약간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조용히 빵을 사서 가려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면, 너도 편지를 써볼래?"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르크보드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줄을 적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지만, 여기 오면 엄마가 만든 빵 냄새가 나요."

 

엄마는 그 글을 읽고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네가 엄마를 그리워할 때마다, 언제든지 여기에 와도 돼."

 

그날 이후, 아이는 자주 빵집을 찾았다. 그리고 벽에는 점점 더 많은 편지들이 쌓여갔다.

어느새 그 작은 빵집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해주는 장소였다.

 


어느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소연은 엄마와 함께 빵을 굽고 있었다. 가게 안은 빵 굽는 고소한 냄새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엄마는 문득 벽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수십 장의 편지들이 코르크보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마는 소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소연아, 네가 나에게 준 편지가 우리 빵집을 이렇게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줬어."

 

소연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빵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그날, 엄마는 깊이 깨달았다.
빵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빵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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