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8명, 그 숫자를 아무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반응형

매일 38명, 그 숫자를 아무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하루에 몇 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지 아는가. 38명이다. 한 반 학급 인원보다 많다. 1년이면 만 3천 명을 훌쩍 넘는다.

이 숫자가 이상한 건 크기 때문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순위가 안 바뀐다는 것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 짧게 흔들린 해는 있어도 왕좌를 내준 적은 없다.

숫자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이상한 나라다. 원인 분석 보고서는 매년 나온다. 대책 발표도 매년 나온다. 그런데 결과는 그대로다.

왜 안 바뀔까.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짚는 지점은 하나다.

예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

  •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경찰청이 각자 예방 사업을 따로 운영한다
  • 사업마다 담당 부서가 다르니 한 해 지나면 이어받는 사람도 바뀐다
  • 예산이 매년 국회 심의를 새로 통과해야 해서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 지역 상담센터는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중앙 예산은 홍보물 제작에 쓰이기도 한다

기금이라는 다른 방식

그래서 나온 제안이 자살예방기금이다. 매년 예산 항목으로 눈치를 보는 대신, 별도 재원을 안정적으로 쌓아두자는 것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처럼 목적이 뚜렷한 특별기금을 만들자는 논리다.

핀란드는 1990년대 국가 프로젝트로 자살률을 절반 가까이 낮췄다. 일본도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만들고 지자체마다 전담 예산을 배정한 뒤로 자살률이 꾸준히 내려갔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예산을 끊기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

예방은 단발성 캠페인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재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돈보다 먼저 필요한 것

하지만 기금만 만든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상담 전화를 걸어도 연결까지 몇 분씩 기다려야 하는 지역이 아직 많다. 상담사 한 명이 맡는 인구가 도시와 농촌에서 몇 배씩 차이가 난다.

  • 24시간 위기상담 전화의 지역별 대기시간 격차 해소
  •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 인력의 처우 개선과 장기 근속 유도
  • 자살 시도 이후 사후관리, 즉 재시도를 막는 후속 돌봄 체계 강화
  • 언론 보도 기준을 지키는 자살 보도 권고안의 실효성 확보

네 가지 다 돈이 든다. 그런데 지금 구조에서는 이 넷 중 어느 것도 몇 년씩 이어서 투자받기가 어렵다. 예산이 해마다 새로 배정되니 담당자는 결과를 낼 시간도 없이 다음 예산안을 걱정한다.


정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

국회는 회기마다 새 법안을 낸다. 자살예방기금 신설안도 몇 차례 발의됐다. 그런데 재원 확보 방안을 두고 부처 간 이견이 생기면 논의는 다음 회기로 넘어간다.

그 사이에도 상담 전화는 울린다.

정치의 시간표와 벼랑 끝에 선 사람의 시간표는 다르게 흘러간다

.

오늘 다르게 볼 것

자살률 1위라는 말을 뉴스에서 스치듯 넘긴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예산 항목 하나를 두고 몇 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회의실이 있다. 통계가 아니라 그 회의실을 오늘은 한 번 떠올려 보자.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