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수배됐던 이름 하나가, 평양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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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수배됐던 이름 하나가, 평양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이름 하나가 사라졌다

국제수배자 명단에 56년째 남아 있던 이름 하나가 최근 조용히 지워졌다

. 아카기 시로. 1970년 일본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넘어간 아홉 명 중 한 명이다. 평양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반세기 넘게 이어진 도피극이 재판도, 송환도 없이 끝났다.

본인이 직접 체포된 것도 아니다. 죽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된 셈이다. 일본 경찰청은 여전히 그를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완전히 빼지 않고 있다.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사망설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1970년 3월 31일, 요도호

그날 도쿄 하네다공항을 떠난 일본항공 351편, 별명 요도호는 후쿠오카로 향하던 국내선이었다. 승객 129명을 태운 이 비행기를 일본 급진 좌파 조직 적군파 소속 청년 아홉 명이 장악했다. 무기는 일본도와 사제 폭탄이었다. 목적지는 후쿠오카가 아니라 평양이었다.

흥미로운 반전은 여기서 나온다. 북한은 승무원을 속이려고 평양 순안공항을 서울 김포공항처럼 위장했다. 조종사는 실제로 김포에 착륙하고도 평양인 줄 알았다. 며칠간의 협상 끝에 승객 전원은 풀려났고, 당시 일본 운수정무차관이 대신 인질을 자처해 비행기에 올라 평양까지 동행했다.

  • 1970년 3월 31일, 하네다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 351편 납치
  • 가담자는 적군파 소속 청년 9명
  • 탑승객 129명은 협상 끝에 전원 무사 귀환
  • 일본 운수정무차관이 대신 인질 자원, 비행기와 함께 평양행
  • 납치범 전원은 이후 북한에 정착

아카기 시로, 그리고 아홉 명의 청년들

이들은 흔한 테러범이 아니었다. 도쿄대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도 섞여 있었다.

세계 혁명을 꿈꾸던 20대 청년들이었다

. 무장봉기로 일본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의 종착지가 평양이었다.

아카기 시로는 그중에서도 오래 이름이 남은 인물이다. 납치 당시 20대였던 그는 이후 반세기를 북한에서 보냈다. 일본 공안 당국은 그를 포함한 생존 조원들을 계속 국제수배자로 관리해왔다. 본국으로 돌아오면 즉시 체포하겠다는 뜻이었지만, 정작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혁명을 꿈꾸며 떠난 비행기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은 건 반세기짜리 수배 전단뿐이었다

평양에 남은 삶

납치범들은 북한에서 이른바 요도호 그룹으로 불리며 집단생활을 이어갔다. 일부는 현지에서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그 아내들 중 몇몇은 본인도 일본에서 납치돼 끌려온 것으로 훗날 밝혀지며 파장을 낳았다. 낭만적 혁명 서사로 시작한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며 납북 피해자 문제로 번진 셈이다.

일본 정부는 이 그룹 구성원들이 북한의 대일 공작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루됐다고 오랫동안 의심해왔다. 실제로 조원 일부는 일본으로 몰래 돌아왔다가 여권 위조나 밀입국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반면 아카기 시로처럼 끝내 북한을 떠나지 않고 생을 마친 이들도 있다. 아홉 명이었던 원년 멤버는 이제 절반도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소식이 갖는 무게

왜 하필 지금 이 소식이 다시 조명받을까.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협상 카드가 하나 있다. 바로 납북 일본인 피해자 문제다. 요도호 사건은 그 문제의 출발점 격인 사건으로 꼽힌다.

냉전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가 하나둘 사라지면서, 진상을 직접 증언할 사람도 함께 줄어드는 셈이다. 일본 내에서는 이런 이유로 아카기의 사망설을 단순한 부고가 아니라 외교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살아있는 증인이 사라질수록, 협상 테이블에서 일본 정부가 쥘 수 있는 패도 함께 줄어든다는 논리다.

핵심 포인트

요도호 납치는 단순 테러 사건이 아니라, 56년째 풀리지 않은 일본인 납북 문제의 출발점으로 다뤄진다.

자주 묻는 질문

1

요도호 사건 승객들은 모두 무사했나?

그렇다. 협상 끝에 탑승객 129명 전원이 무사히 풀려났다. 일본 정무차관이 대신 인질을 자원해 납치범들과 함께 평양까지 동행하면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2

납치범들은 이후 처벌받았나?

북한에 정착한 조원들은 일본 사법권 밖에 있어 처벌을 피했다. 다만 이후 밀입국 등으로 일본에 발을 들인 일부는 체포돼 처벌받았다.

3

아카기 시로의 사망은 공식 확인된 건가?

아직 공식 확인은 아니다. 사망 정황이 전해졌을 뿐, 일본 당국은 시신을 확인하지 못해 국제수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4

이 사건이 납북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나?

요도호 그룹 일부가 북한 체류 중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이 실제로는 일본에서 납치돼 끌려온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훗날 드러났다. 이 때문에 사건 전체가 납북 문제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5

적군파는 지금도 활동하나?

아니다. 일본 내 적군파 조직은 1970~80년대를 거치며 사실상 와해됐다. 북한에 남은 요도호 그룹 생존자들도 대부분 고령으로, 조직적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국제수배 명단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진다고 해서 사건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남은 질문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오늘 이 소식을 접했다면, 냉전이 남긴 미완의 숙제가 아직도 사람 목숨 단위로 하나씩 마감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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