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출 버튼이 안 눌린 그 밤, 대학입시는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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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 버튼이 안 눌린 그 밤, 대학입시는 멈췄다

화면은 하얗게 멈췄다

밤 11시 50분, 한 수험생은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대학 수시 원서접수 사이트의 '제출' 버튼을 다섯 번, 열 번 눌러도 화면은 꼼짝하지 않았다. 로딩 아이콘만 빙글빙글 돌아갔다. 화면 한구석에는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매정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채 10분도 남지 않은 그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의 얼굴도 점점 굳어갔다. 어머니는 휴대폰으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계속됐고, 아버지는 노트북을 재부팅해보자고 했다가 곧 그마저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몇 달을 준비한 자기소개서와 서류가, 정작 마지막 순간 버튼 하나에 발이 묶인 셈이었다.

수시 전형은 한 해에도 수십만 명이 몰리는 대입의 관문이다. 원서 한 장을 내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한 학생에게, 마감 시간은 협상이 불가능한 절대선이었다.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추천서를 챙기고, 지원 전략을 몇 번이고 다시 짜는 과정이 그 마감 시간 하나로 완성된다. 학생부와 자소서, 활동 증빙 서류를 스캔해 올리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하필 이 시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둔 때이기도 하다. 시험 공부에 쏟아야 할 집중력을, 학생들은 접속 오류와 씨름하며 밤을 새워 소진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나온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능 D-데이보다 전날 밤 '먹통 사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고 한다.

사고의 전말

실제로 이달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원서접수 대행을 맡은 유웨이의 시스템에서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마감 시간대에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이트가 멈췄고, 제한 시간 안에 원서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속출했다. 특정 대학 한두 곳이 아니라 유웨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여러 대학의 지원자들이 동시에 피해를 봤다. 트래픽이 순간적으로 급증하는 야간 마감 시간대라는 점은 매년 반복되는 조건인데도, 정작 시스템은 그 부담을 버티도록 설계돼 있지 않았던 셈이다. 서버 증설이나 부하 분산 같은 기본적인 대비책이 있었는지조차 의문이 제기됐다. 대교협과 유웨이는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공식 사과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대교협과 유웨이가 밝힌

구제 신청자는 302명이다

. 마감을 넘겼어도 원서를 인정해달라고 손을 든 학생들의 숫자다. 그런데 이 숫자 안에는, 접수를 포기하고 급히 다른 대학을 알아본 학생이나 아예 지원 자체를 접은 학생은 들어있지 않다. 밤새 화면을 붙잡고 있다가 새벽에 지쳐 포기한 경우, 애초에 구제 신청 절차 자체를 몰라서 넘어간 경우도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피해자만 302명일 뿐, 보이지 않는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는 그 밤이 수능을 앞두고 찾아온 첫 번째 좌절이었을 것이다.

원서 접수는 학생에게는 인생이 걸린 마감이고, 기관에게는 사과문 한 장으로 끝나는 사고다.

남의 집엔 원칙, 내 집엔 사정

대학은 그동안 학생에게 유난히 엄격했다. 마감을 1분만 넘겨도 예외는 없다고 못 박아 왔고, 준비 부족이나 실수는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서류 한 장이 빠져도, 사진 파일 용량이 조금만 커도 접수 자체가 거부되던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우편 접수 소인 하루 차이로 탈락 통보를 받은 학생 사례도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시스템이 멈추자, 이번만은 봐달라며 구제책부터 내놓았다. 게다가 구제 여부의 최종 판단은 학생이 아니라 다시 대학 쪽으로 넘어갔다.

남의 집엔 원칙을 들이대고, 내 집엔 사정을 봐달라는 태도다

.

이런 접속 장애가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수시 원서접수 시기마다 트래픽 폭주 우려는 해마다 제기돼 왔고, 그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마감일 하루를 늘려주거나 접속 시간을 분산시키는 식의 미봉책이 반복됐을 뿐, 인프라 자체를 뜯어고쳤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원서접수를 외부 업체에 맡기고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구조에서,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에 쓸 예산과 시간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누가 책임지고 투자할지 애매한 구조에서는, 사고가 나도 '올해는 운이 나빴다'는 말로 넘어가기 쉽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과문은 새로 쓰이지만, 시스템 자체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마감 직전 접속 폭주에도 대체 접수 방법을 미리 안내하지 않았다
  • 대교협과 유웨이가 함께 사과했지만, 정확한 원인과 책임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구제 신청 302명 중 몇 명이 실제로 원서를 인정받을지는 개별 대학의 판단에 달려 있다
  • 비슷한 트래픽 폭주 우려는 이전 입시 시즌에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 확인이 필요하다

구제 신청을 했다고 합격 기회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최종 인정 여부는 지원한 대학마다 다르게 결정된다.

부모 세대는 몰랐던 위험

부모 세대가 대학에 지원하던 시절에는 원서를 손으로 쓰고 우체국에서 등기로 부쳤다. 늦어도 소인이 마감일 안에 찍히면 인정됐고, 서버가 멈춰 인생이 걸린 순간을 놓치는 일 같은 건 상상조차 못 했다. 창구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서류를 직접 건네던 그 시절에는, 적어도 '먹통'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라 해봐야 우체국 창구가 붐벼 줄을 서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접수 마감 며칠 전에 여유 있게 다녀오면 피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편리해진 만큼 위험도 한곳에 몰렸다. 시스템 하나가 멈추면 수십만 명이 동시에 발이 묶인다. 편의를 준 기술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감당하지 못할 위험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기업은 AI를 가르치는데, 대입 시스템은 그대로다

같은 시기, 마케팅 기업 이엠넷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바이브코딩' 교육을 진행했다. 코드를 몰라도 말로 지시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실무자들의 AI 활용 역량을 실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자의 영역이던 일을, 이제는 마케팅 담당자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개발 지식이 없는 직원도 간단한 자동화 도구나 업무용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업은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최신 도구를 쥐여주려고 예산과 시간을 쓴다. 반면 수십만 명의 진로가 걸린 대입 시스템은 매년 같은 시기, 같은 방식으로 몰리는 접속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AI 도구 활용법을 가르치고 코딩 교육을 정규 과정에 넣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그런데 그 학생들의 미래를 가르는 원서접수 시스템은 여전히 접속자 폭주 하나 버티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직원 몇백 명을 위해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고 교육까지 마련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수십만 명의 인생이 걸린 서버 하나를 제대로 증설하지 못하는 셈이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면,

인프라 투자의 우선순위가 거꾸로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 가르치는 내용은 미래를 향해 있는데, 그 내용을 실현하는 행정 시스템은 과거에 멈춰 있는 셈이다.

구분 기업 사례(이엠넷) 대입 시스템(대교협·유웨이)
대응 방식 전 직원 AI 실무 교육 진행 사고 후 사과문 발표
초점 실전 역량 강화 원인 점검 및 구제 신청 접수
결과 업무 효율 개선 기대 구제 신청 302명 접수

무대 위로 올라온 아이들의 고민

한편 충남의 한 학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생 문제에 다가갔다. 학생들의 온라인 도박 중독을 주제로 삼아 직접 뮤지컬 무대를 올린 것이다. 교실에서 강의로 백 번 경고하는 것보다, 또래의 이야기를 노래와 연기로 보여주는 쪽이 마음에 더 오래 남는다는 판단에서였다. 학생들은 몇 주에 걸쳐 대본 회의를 하고, 노래 연습을 하고, 무대 소품까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대본을 쓰고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됐다.

도박은 이제 청소년에게도 낯설지 않은 위험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베팅 사이트에 접속하는 데 몇 초면 충분하다. 용돈을 잃고, 그 돈을 만회하려다 더 큰돈을 잃는 패턴은 어른들의 도박 중독과 다르지 않다. 이 학교는 처벌이나 경고 대신, 학생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하게 하면서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 소화하도록 이끌었다. 같은 교육 현장 안에서도 온도차는 뚜렷하다. 대입 행정은 매뉴얼과 마감 시간에 갇혀 사고가 나도 사과문 한 장으로 마무리되는 반면, 교실 안에서는 학생의 목소리를 무대에 세우는 유연한 시도가 이어진다. 정작 더 큰 힘과 예산을 가진 쪽이 더 굳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자주 묻는 질문

1

수시 원서접수 사이트는 왜 먹통이 됐나요?

마감 시간대에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려 시스템이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교협과 유웨이는 공식 사과문을 내고 원인 점검에 들어갔다.

2

마감을 못 지킨 학생들은 구제받을 수 있나요?

현재까지 302명이 구제 신청을 접수했다. 다만 개별 대학이 인정 여부를 따로 판단하는 구조라 학생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3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시스템을 운영한 유웨이와 이를 관리 감독하는 대교협 모두 사과했지만, 정확한 책임 소재는 아직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4

이런 사고가 처음인가요?

수시 원서접수 시기마다 트래픽 폭주로 인한 접속 장애 우려는 해마다 제기돼 왔다.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 없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 관련 사회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충남의 한 학교는 학생 도박 중독 문제를 뮤지컬 무대로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표현하고 소화하도록 했다. 딱딱한 예방 교육 대신 창작으로 접근한 사례다.

오늘 이 기사를 읽었다면, '누가 사과했는가'보다 '왜 매년 반복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입 시스템은 국가가 관리하는 가장 크고 무거운 디지털 인프라 중 하나다. 수십만 명의 미래가 걸린 서버를 매년 계약 갱신으로 운영하면서, 정작 부하 테스트나 증설 계획은 뒷전으로 미뤄온 결과가 이번 사태다. 그 무게에 걸맞은 책임은,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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