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다음 날, 형제는 서로 다른 슬픔을 산다 — 샐리 루니 《인터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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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로비, 두 얼굴
장례식장 로비에 형제가 나란히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한 명은 조문객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넨다. 조문록에 이름을 적는 손길 하나, 화환에 적힌 문구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챙기는 사람이다. 다른 한 명은 구석 벽에 등을 기댄 채 시선을 피하고, 넥타이 매듭만 몇 번이고 고쳐 맨다. 누가 말을 걸어도 짧은 대답만 돌려주고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같은 아버지를 잃었는데 슬픔을 견디는 방식은 이렇게나 다르다. 샐리 루니의 신작 《인터메초》는 바로 이 장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상실이라는 사건 하나가 두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얼굴로 도착한다. 형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쪽을 선택했고, 동생은 무너지는 쪽을 선택했다. 정확히는, 선택했다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밀려났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한쪽은 일상을 붙잡아 슬픔을 뒤로 미루고, 다른 한쪽은 일상 자체가 무너지면서 슬픔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나이 차이가 있는 형제라 애도의 속도조차 어긋난다는 설정도 눈에 띈다. 두 방식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소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보여준다.
형 피터, 두 여자 사이의 남자
피터는 변호사다. 사교적이고 언변이 좋고, 법정에서든 회식 자리에서든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명함 한 장으로 삶이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연인 실비아와 헤어진 뒤에도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고
, 동시에 나이 어린 나오미와도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겉으로는 전 여자친구와 깔끔하게 이별한 성숙한 어른처럼 굴지만, 실은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새로운 관계로 도망친 쪽에 가깝다.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그의 태도에서, 독자는 그가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눈치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어른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잃은 시점에 하필 이 방황이 겹친다는 설정이,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상징하는 '논리로 정리되는 삶'과, 실제 그의 연애가 보여주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 사이의 간극이 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세운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무너지는 지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이 캐릭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생 아이번, 체스판 위의 은둔자
동생 아이번은 정반대다. 한때 촉망받던 체스 선수였지만 지금은 슬럼프에 빠져 있고, 주류 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산다. 대회 성적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체스판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수를 읽는 시간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훨씬 편안한 사람이다. 형이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인받는 쪽이라면, 아이번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확인받는 쪽에 가깝다. 말수가 적고 관계에 서툴다는 점에서, 그는 형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세상과 거리를 둔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그의 세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역시 상실 이후의 삶을 통과하는 중이다. 무너진 사람이 오히려 새로운 감정 앞에서는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드러난다. 체스에서 다음 수를 예측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정작 자기 마음의 다음 수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도 이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계산이 통하지 않는 감정 앞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소설 후반부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제목이 품은 두 개의 의미
인터메초라는 단어는 음악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놓인 짧은 간주곡을 가리킨다. 곡의 중심 주제가 아니라 그 사이, 잠깐 숨을 고르는 구간이다. 체스에서는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두는 한 수를 뜻하기도 한다. 판의 흐름을 끊고 전체 국면을 뒤흔드는 수다. 음악의 막간과 체스의 기습, 전혀 다른 두 분야에서 온 이 단어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소설의 제목이 완성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제에게 찾아온 이 시간은, 인생이라는 긴 악장 사이에 끼어든 낯설고 불안정한 막간이다. 계획에 없던 시간, 예상 못한 한 수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대응이 안 되는 국면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평온했던 일상의 흐름이 끊기고, 형제는 각자 낯선 수를 두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제목 하나에 소설 전체의 정서가 압축돼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이미 잘 설계된 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제에게 찾아온 시간은, 인생이라는 긴 악장 사이에 끼어든 막간과 같다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나
샐리 루니는 이미 'MZ세대의 샐린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만큼 젊은 독자들의 감정선을,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정확하게 짚어내는 작가라는 뜻이다. 이번 신작은
뉴욕타임스와 타임을 포함한 스무 곳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아일랜드문학상 작가상까지 수상했다
. 영미권에서는 출간 당일 서점 앞에 줄이 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질 만큼, 문학 소설로는 드문 화제성을 만들어냈다. 국내에는 은행나무를 통해 2026년 2월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 지금부터 원작의 배경을 알아두면 출간 이후 훨씬 깊이 읽을 수 있다.
- 뉴욕타임스·타임 등 20개 매체 '올해의 책' 선정
- 아일랜드문학상 작가상 수상
- 영미권 서점가 줄서기 열풍을 일으킨 화제작
| 구분 | 형 피터 | 동생 아이번 |
|---|---|---|
| 직업 | 변호사 | 체스 선수(슬럼프) |
| 관계 | 실비아·나오미 사이에서 방황 | 우연히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짐 |
| 삶의 태도 | 사교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임 | 주류 사회와 거리를 둠 |
애도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많은 소설이 애도를 눈물과 침묵으로 그린다. 장례식장, 검은 옷, 조용한 오열. 익숙한 장면들이다. 《인터메초》는 다르게 접근한다. 슬픔은 형제의 연애, 직업적 태도, 심지어 체스 한 판의 수읽기 속으로 스며든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일상의 결정들 속에 숨겨두는 방식이,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만든다. 독자는 두 형제의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그 뒤에 숨은 슬픔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형제 관계, 상실과 애도, 얽힌 사랑이라는 세 가지 주제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소재다. 누구나 가족을 잃어본 적이 있고, 누구나 관계 정리에 서툴렀던 순간이 있다. 그런데도 이 소재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형제라는 거울을 통해 감정이 이중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뻔했을 감정이, 둘의 대비 속에서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피터의 방황과 아이번의 사랑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둘을 비교하게 된다. 그 비교 과정 자체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핵심 요약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형 피터와 동생 아이번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통과하는 이야기. 대비되는 두 형제를 통해 애도와 사랑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자주 묻는 질문
《인터메초》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시작해 남겨진 두 형제 피터와 아이번이 상실 이후의 시간을 겪는 이야기다. 형은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동생은 슬럼프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제목 '인터메초'는 무슨 뜻인가요?
음악에서는 악장 사이의 짧은 간주곡을, 체스에서는 상대가 예상 못한 한 수를 뜻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제에게 찾아온 시간이 그런 막간과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샐리 루니는 어떤 작가인가요?
'MZ세대의 샐린저'로 불리는 작가로, 이번 작품으로 뉴욕타임스·타임 등 20개 매체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아일랜드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언제 어디서 출간되나요?
은행나무에서 2026년 2월 출간 예정이다.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나요?
가족 관계, 상실과 애도, 복잡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은 독자, 그리고 화제의 영미 문학을 먼저 읽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보라. 상실 앞에서 나는 피터처럼 겉으로 침착한 척하는 쪽인가, 아니면 아이번처럼 무너진 채로도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는 쪽인가. 《인터메초》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게 만든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자신의 애도 방식을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다. 형제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경험, 그것이 이 작품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