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40만 부가 증명한 '진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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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부터 걸렸다. 혼모노(本物)는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이다. 그런데 표지를 넘기자마자 드는 생각은 정반대였다.
나는 지금까지 '진짜'라고 믿어온 것들 중 몇 개나 실제로 진짜였을까
. 성해나의 소설집은 이 질문 하나로 표제작을 포함한 일곱 편을 밀어붙인다. 답을 주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책이다.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들 이유는 간단하다. SNS에서 진심을 증명해야 하고, 이력서 한 줄에 진정성을 써넣어야 하고, 가족 앞에서도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 이 소설은 당신 얘기다. 무당이든 팬이든 가족이든, 성해나가 그리는 인물들은 전부 '진짜'가 되려다 균열을 드러낸다. 그 균열을 읽는 동안 당신도 자신의 균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표제작 「혼모노」, 무당의 세습은 왜 콘텐츠가 되었나
표제작의 무대는 무속이다. 신내림과 세습이라는,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이 자본과 미디어를 만나면서 어떻게 뒤틀리는지를 성해나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조회수가 신의 영험함을 증명하는 잣대가 되고, 팔로워 수가 무당의 급을 결정하는 세계. 전통이 콘텐츠로 소비되는 순간, '진짜' 무당이란 무엇인지 그 경계는 순식간에 흐려진다.
이 설정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비슷한 풍경을 매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명상 앱, 심리 상담, 힐링 콘텐츠까지 영성이 산업이 된 지 오래다. 성해나는 무속이라는 오래된 소재를 빌려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비춘다. 낯선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스마트폰 속 내 피드와 겹쳐 보이는 순간이 온다.
표제작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힌 장면은 신내림을 받은 인물이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이다. 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인가, 신을 연기하는 사람인가. 이 물음은 답이 없다. 성해나는 답을 주는 대신 독자를 그 애매한 자리에 그대로 세워둔다.
팬덤 소설 「길티 클럽」, 진심과 폭력은 한 끗 차이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작품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다. 팬덤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진심의 경계를 다룬다. 최애를 향한 마음이 순수한 애정에서 출발했더라도, 그 마음이 집단이 되고 목소리가 되는 순간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팬덤 문화 안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뜨끔한 대목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성해나가 던지는 질문은 이거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진짜라면,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결과까지 진짜여야 하지 않나. 팬덤은 개인의 진심을 모아 거대한 힘으로 만든다. 그 힘이 누군가를 지키기도 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짓밟기도 한다는 사실을 소설은 감정을 부풀리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스무드」를 비롯한 나머지 단편들도 결이 비슷하다. 가족, 건축, 예술이라는 각기 다른 소재를 통과하지만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나는 지금 진짜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진짜인 척 잘 해내고 있는가. 일곱 편을 다 읽고 나면 이 질문이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따라온다.
- 무속 — 신내림과 세습, 자본과 미디어 시대의 전통
- 팬덤 — 진심으로 시작된 마음이 폭력이 되는 순간
- 가족 —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 숨은 위선과 욕망
- 예술과 건축 — 완성된 결과물 뒤에 감춰진 것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대, 위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성해나가 가족을 다루는 방식은 냉정하다. 흔한 신파나 화해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숨어 있던 위선과 욕망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소설은 불편할 정도로 정확하게 짚는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명절에 웃으며 나눈 대화,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들, 겉으로는 화목해 보였던 순간들이 소설 속 장면과 겹친다. 성해나는 그 겹침을 의도한 듯 문장을 절제한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장면만 보여주는데,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가족 소재 단편이 특히 무서운 건, 이 책 속 인물 중 누구도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들 나름의 이유로 위선을 택한다. 생존을 위해, 사랑을 위해, 혹은 그저 평온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이 소설들은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처럼 읽힌다.
왜 지금 성해나인가 — 40만 부와 3개 문학상이 말해주는 것
《혼모노》는 2025년 3월 창비에서 출간된 이후 꾸준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켰다.
1년 만에 40만 부를 돌파했다는 건, 소설이 흔치 않게 대중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뜻이다
. 문학 담론 안에서만 회자되는 책이 아니라, 서점 매대에서 실제로 팔려나가는 책이라는 얘기다.
동시에 비평의 인정도 뒤따랐다.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까지 연달아 받았다. 대중성과 비평, 둘 중 하나만 잡기도 어려운데 이 책은 둘 다 붙잡았다. 문단 안팎에서 동시에 통했다는 건 그만큼 질문이 보편적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수상 이력을 단순한 스펙으로 읽지 않는다. 무속이라는, 자칫 소재주의로 흐르기 쉬운 이야기를 이만큼 깊이 있게 다뤘다는 건 작가의 취재와 고민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소재의 신기함에 기대지 않고, 그 소재를 통해 결국 우리 얘기를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이 책의 진짜 힘이다.
진짜가 되고자 하는 시도는 번번이 균열을 드러낸다.
성해나의 문장, 냉정해서 더 아프다
성해나의 문장은 감정을 크게 부풀리지 않는다. 슬픈 장면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분노할 만한 장면에서도 담담하다. 이 절제된 톤이 오히려 독자를 더 세게 붙잡는다. 인물이 울지 않아도 독자가 대신 마음이 흔들리는, 그런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이런 문체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감정 이입을 확실하게 유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소 건조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거리감이 오히려 소설의 주제와 잘 맞는다고 본다. '진짜'와 '가짜'를 다루는 소설이 감정을 과잉으로 밀어붙였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었을 것이다.
일곱 편의 단편은 소재도 다르고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이 절제된 문체 하나로 묶인다. 무당의 이야기든 팬덤의 이야기든 가족의 이야기든, 읽는 내내 비슷한 온도로 읽힌다. 단편집인데도 마치 한 편의 긴 소설을 읽은 듯한 여운이 남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 그렇지 않을 사람
모든 책이 모든 독자에게 맞는 건 아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결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성해나는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지 않는다. 소설이 끝나도 찜찜함이 남는데, 그 찜찜함을 즐길 수 있는 독자에게만 추천하고 싶다.
반대로 이런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SNS 속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에서 종종 혼란을 느끼는 사람, 어떤 관계 안에서 나는 진심인가를 자문해본 적 있는 사람, 혹은 그냥 문장 좋은 한국 소설이 읽고 싶은 사람. 이 세 부류 모두에게 《혼모노》는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핵심 요약
《혼모노》는 무속·팬덤·가족·예술이라는 각기 다른 무대를 빌려 '진짜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해나의 소설집이다. 1년 만에 40만 부, 이효석문학상·젊은작가상·신동엽문학상 수상이 그 질문의 무게를 증명한다.
표제작만 읽고 덮지 말 것 — 일곱 편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
표제작 「혼모노」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이 작품만 읽고 책을 덮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일곱 편을 다 읽기를 권한다. 각 단편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때문에, 여러 편을 함께 읽어야 진짜와 가짜라는 주제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무속 이야기 하나만 읽으면 특수한 세계의 이야기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팬덤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잇달아 읽으면 그 특수함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성해나는 이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인상이 강하다. 단편집 한 권을 이렇게 유기적으로 엮어낸 솜씨 자체가 인상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목차를 다시 훑어봤다. 무속, 팬덤, 가족, 건축, 예술. 얼핏 무관해 보이는 소재들이 진짜라는 하나의 실로 꿰어져 있다는 게 새삼 보였다. 단편집이 흔히 흩어지기 쉬운데, 이 책은 오히려 다 읽고 나서야 완성되는 구조다.
특히 인상적인 건 어느 한 편도 힘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제작에 힘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채우기용으로 넣는 소설집도 종종 보는데, 《혼모노》는 그렇지 않았다.
일곱 편 모두 각자의 밀도로 완성돼 있어서, 어디서 읽기를 멈춰도 아쉬움이 남는다
.
자주 묻는 질문
《혼모노》는 어떤 책인가요?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으로, 표제작 「혼모노」를 포함한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무속·팬덤·가족·예술 등을 소재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줄거리는 무엇인가요?
무당의 신내림과 세습이라는 전통이 자본과 미디어 시대를 만나며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그린다. 진짜 무당이란 무엇인지 묻는 이야기다.
어떤 상을 받았나요?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을 연달아 받았다. 비평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은 셈이다.
판매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2025년 3월 창비에서 출간된 이후 1년 만에 4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켰다.
어떤 독자에게 어울리나요?
빠른 전개보다 여운이 남는 소설을 좋아하고,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본 독자에게 어울린다. 답을 주지 않는 결말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덮고 나서 진짜 질문은 하나로 남았다. 나는 SNS 속 나와, 회사에서의 나와, 가족 앞에서의 나 중 어느 쪽이 진짜인가. 성해나는 답을 주지 않았고, 나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당신은 최근에 '이게 진짜 나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