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돌 이라영, 광부 아버지 이선권을 기록하다

목차
쇳돌, 이라영이 부른 아버지의 이름
쇠붙이 냄새가 나는 책이 있다. 640쪽짜리 벽돌 같은 두께의 책을 손에 들면, 종이 사이로 강원도 양양의 갱도 냄새가 새어 나오는 듯하다. 그 안에 새겨진 이름은 이선권, 1947년생, 국내 유일의 자철광이었던 양양광업소의 첫 민주노조 위원장이자 1995년 폐광 당시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그의 딸,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다.
당신이 노동사나 산업사에 별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이 책은 결국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는 자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으면 《쇳돌》이 왜 개인사와 냉전사, 노동운동사를 한 권에 욱여넣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640쪽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면서까지 이 책을 펼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부모의 노동을 안다고 믿었던 착각도 함께 깨질 것이다.
양양광업소, 국내 유일 자철광의 기억
양양광업소는 특별한 곳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철광을 캐던 광산이었고, 그 존재만으로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탄광이라면 태백이나 문경, 정선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자철광을 캐던 곳은 이곳 한 곳뿐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이 광산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그 빈자리를 아버지의 삶으로 채워 넣는다.
책의 시간은 광산이 돌아가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광부들의 노동은 위험했고, 갱도 깊숙이 내려가 쇳돌을 캐내는 하루하루는 몸을 갈아 넣는 노동이었다. 그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것은 많지 않았다. 이선권은 그 안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선택은 그의 삶 전체를 규정했다. 저자는 아버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되짚어간다.
광산 노동은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역사였다. 탄광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간간이 나왔어도, 자철광이라는 낯선 광물을 캐던 노동자들의 삶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지역 신문 한 귀퉁이에 실렸을 법한 이름들이 이 책에서는 640쪽에 걸쳐 다시 불려나온다. 《쇳돌》은 그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선권, 광부에서 노조위원장으로
이선권이라는 이름 앞에는 두 개의 수식어가 붙는다.
양양광업소 첫 민주노조 위원장, 그리고 1995년 폐광 당시 마지막 노조위원장
. 광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사람이 한 광산의 처음과 마지막 노조위원장을 모두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삶이 곧 광산의 역사와 겹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두 장면 사이의 거리를 딸의 시선으로 채워 넣는다.
민주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그 시절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행위 자체가 감시와 낙인의 대상이 되던 시대였고, 회사 측과 정보기관의 눈초리를 동시에 견뎌야 했다. 이선권은 그 위험을 감수하며 첫 민주노조 위원장이 되었고, 광산이 문을 닫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그는 조합원들 앞에 서 있었다.
딸이 아버지를 기록한다는 것은 객관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라영은 그 불가능함을 숨기지 않는다. 예술사회학자로서 훈련된 분석적 시선과, 딸로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한 문장 안에서 뒤섞인다. 어떤 대목에서는 냉정한 연구자의 목소리가, 다른 대목에서는 서운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딸의 목소리가 번갈아 등장한다. 이 혼재야말로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니라 자문화기술지로 불리는 이유다.
- 개인사: 광부 아버지와 그 가족의 구체적 삶
- 노동사: 첫 민주노조 결성부터 1995년 폐광까지
- 냉전사: 반공주의와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빨갱이 자식, 냉전이 남긴 낙인
노동조합 활동가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라영은 자신이 어린 시절 '빨갱이 자식'이라 불렸던 경험을 책 속에 풀어놓는다. 학교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또래 아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그 말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게였다. 아버지의 선택이 자녀의 삶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이 대목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냉전과 반공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한 가족 전체가 특정한 시선 아래 놓였다. 그 시선은 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골목에서, 심지어 친척들 사이에서도 아이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누구도 직접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그 눈빛만으로 자신이 다르게 취급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저자는 그 낙인의 감각을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쇳돌》은 노동사 책이면서 동시에 감정의 기록이 된다. 아버지의 투쟁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어린 날의 상처가 한 문장 안에서 부딪힌다. 자랑스러움과 원망은 서로를 지우지 않은 채 나란히 놓인다. 그 모순을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것이 이 책의 힘이다.
노동조합을 만든 대가로, 딸은 빨갱이 자식이 되었다.
폐광 이후, 산업이 사라진 자리
1995년, 양양광업소는 문을 닫았다. 광산이 사라진 자리에는 광부도, 그 가족도 남았다. 산업이 철수한 뒤에도 사람은 그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채굴 장비는 실려 나갔지만 사람들의 생계와 관계, 공동체의 기억은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쇳돌》은 그 '이후'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폐광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의 삶은 그날 이후로도 수십 년간 계속되었고, 지역 공동체는 산업 없이 존속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저자는 그 변화를 겪은 사람들의 현재를 인터뷰로 기록한다. 통계표 한 줄로 처리되는 실업률이라는 숫자 뒤에 어떤 개별 삶들이 있었는지, 이 책은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산업이 사라진 자리를 기록하는 작업은 흔치 않다. 대개는 산업이 융성하던 시절이나 몰락의 순간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그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일상은 조명받지 못한 채 흘러간다. 폐광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쇳돌》은 바로 그 잊힌 시간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핵심 요약
《쇳돌》은 국내 유일 자철광이었던 양양광업소 노조위원장 이선권의 삶을 딸인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기록한 640쪽 분량의 자문화기술지다. 노동사와 냉전사, 가족사가 한 권에 교차한다.
640쪽의 자문화기술지, 딸이 쓰는 아버지
640쪽이라는 분량은 결코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두께가 아니다. 이 책은 속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터뷰 기록과 자전적 서술, 그리고 시대적 배경 설명이 교차하며 쌓이는 방식이라, 한 챕터씩 천천히 읽어야 온전히 전달되는 종류의 글이다. 단숨에 읽어치우려 들면 오히려 인물들의 목소리가 서로 뭉개져 버릴 수 있다.
자문화기술지라는 형식은 연구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가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방법론이다. 이라영은 예술사회학자로서의 도구를 아버지의 삶에 그대로 적용했다. 인터뷰 방법론과 문헌 조사, 그리고 딸이라는 위치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사적 기억이 한데 엮인다. 그 결과 이 책은
감상적인 회고록도, 건조한 학술서도 아닌 독특한 위치
에 놓인다.
딸이 아버지의 노동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적인 기억을 공적인 역사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개인의 가족사에서 출발했지만 그 끝은 한국 노동운동사와 냉전사로 확장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시대 전체의 지도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 확장의 폭이 이 책을 단순한 가족 이야기 이상으로 만든다.
예술사회학자가 광부의 삶을 쓴 이유
이라영은 원래 예술과 사회를 잇는 글을 써온 예술사회학자다. 미학이나 문화 현상을 다루던 연구자가 왜 광산 노동자의 삶을 640쪽에 걸쳐 기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광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과 연구자 사이의 거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예술사회학이라는 배경은 이 책에 독특한 결을 더한다. 노동운동사를 다루는 책들이 흔히 구호와 통계로 채워지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인물의 표정과 말투, 침묵의 순간까지 포착하려 한다. 딱딱한 사료 대신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사 연구자가 아니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라면 충분히 끌릴 만하다.
왜 지금 쇳돌을 읽어야 하나
2026년 2월 출간된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곧바로 경향신문, 서울신문, 여성신문 등 주요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짧은 신간 소개를 넘어 서평과 인터뷰 형태로 다뤄질 만큼 무게 있게 취급됐다.
교보문고 '올해의 인문교양서'
에 선정될 만큼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화제성만 놓고 봐도 지금 읽어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화제성보다 중요한 건 이 책이 다루는 시간이 곧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양광업소를 기억하는 세대, 첫 민주노조를 조직했던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47년생인 이선권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문자로 남기는 작업은 지금이 아니면 점점 어려워진다.
당신의 부모 세대에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조직에서 겪은 어떤 선택과 그로 인한 대가를 자식에게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 채 넘어간 사연 말이다. 명절 밥상에서 몇 마디로 얼버무려지고 마는 그 이야기들이, 사실은 640쪽으로도 다 못 담을 만큼 두꺼울 수 있다. 《쇳돌》은 그런 이야기를 기록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 항목 | 내용 |
|---|---|
| 저자 |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
| 실존 인물 | 이선권, 1947년생, 양양광업소 노조위원장 |
| 출간 | 동녘, 2026년 2월 |
| 분량 | 640쪽 |
자주 묻는 질문
쇳돌은 어떤 장르의 책인가요?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자신의 아버지 이선권의 삶을 따라가며 쓴 자문화기술지적 논픽션이다. 인터뷰와 기록, 자전적 서술이 교차하는 형식이다.
이선권은 누구인가요?
1947년생으로 국내 유일 자철광이던 강원도 양양광업소의 첫 민주노조 위원장이자, 1995년 폐광 당시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던 실존 인물이다.
분량이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64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 한 번에 완독하기보다 개인사, 노동사, 냉전사 흐름을 나눠 천천히 읽는 편이 낫다.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경향신문, 서울신문, 여성신문 등 주요 언론이 다뤘고 교보문고 올해의 인문교양서에 선정될 만큼 주목받았다.
출판사와 출간 시점은?
동녘에서 2026년 2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노동을, 그들이 감수한 위험과 대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라영은 그 질문에 640쪽 분량으로 답했다. 모든 자식이 그런 방식으로 답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물어볼 수는 있다.
쇳돌이라는 제목은 광물이면서 동시에 단단함의 비유처럼 읽힌다. 깨지지 않고 버텨낸 한 사람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기록하겠다고 나선 딸의 결심이 겹쳐진다. 여러분은 부모님의 젊은 시절 노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