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꽃
회사를 그만두고, 소희의 세상은 잿빛이 되었다. 번아웃이었다. 끝없이 달리던 트랙에서 강제로 이탈 당한 기분. 그녀는 도망치듯 모든 연을 끊고, 볕도 잘 들지 않는 낡은 빌라의 꼭대기 층으로 숨어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빼곡한 빌라의 벽들뿐이었지만, 그 삭막함 속에도 유일하게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맞은편 빌라 302호의 작은 발코니였다. 그곳에는 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작은 토분에 담긴 이름 모를 꽃에게 물을 주었다. 잎사귀를 정성껏 닦아주고, 시든 잎을 떼어내고, 가끔은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햇볕을 골고루 받게 해주었다. 소희는 그 꽃의 이름을 몰랐다. 흔한 장미나 튤립도 아니었고, 그저 작고 파란 잎사귀 몇 개에 가느다란 줄기 하나가 전부인, 눈에 띄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