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부를 때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빨려 들어간 진공관 속에 사는 것 같았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후, 내 세상은 그렇게 변했다. 웃음소리, 울음소리, 심지어 나지막한 한숨 소리마저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나는 낡고 먼지 쌓인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헌책방, ‘시간의 책장’에서 일했다. 손님과의 소통은 계산대 위에 놓인 작은 화이트보드와 펜이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7,000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 언어는 그게 다였다. 그 남자가 처음 책방에 들어온 건,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늦가을이었다. 그는 책방의 분위기처럼 말이 없었다. 훤칠한 키에 단단해 보이는 손, 무심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를 깊이 관찰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책장 사이를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