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아래 피아노
회색 빌딩 숲 사이를 빠져나가는 퇴근길은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아이돌 음악도, 스마트폰 화면 속 시끌벅적한 세상사도 수현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스물아홉, 딱히 불행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어디선가, 아주 낡고 깊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전자음이 아닌, 나무 울림통을 타고 번지는 진짜 피아노 소리였다. 소리는 번화가 한쪽 구석, 낡은 상점들 앞에 놓인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허리를 조금 구부린 채 건반 위에 마른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주변의 소음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하지만 그 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