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는 아이
서른 중반의 민준에게 세상은 온통 회색이었다. 한때는 세상의 모든 색을 캔버스에 담겠다며 밤새 붓을 놓지 않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디자인 회사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규격화된 이미지를 뽑아내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 갈 뿐이었고, 어릴 적 꿈은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져 갔다. 주말이면 텅 빈 캔버스 앞에 앉아보기도 했지만, 붓을 쥔 손은 허공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다. 뭘 그려야 할지, 아니, 뭘 그리고 싶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답답한 마음에 집 앞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저만치에서 꼬마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다리가 조금 불편한지 절뚝거리면서도, 낡은 스케치북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