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버스 정류장
새벽 공기가 차갑게 코끝을 스치는 시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시 한 귀퉁이, 낡고 빛바랜 초록색 지붕을 인 버스 정류장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익숙한 얼굴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각자의 시름과 상념에 잠겨 묵묵히 버스만을 기다릴 뿐, 따스한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삭막한 풍경이 몇 해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박 씨 할머니가 있었다. 허리가 살짝 굽었지만, 새벽 시장에 나가는 발걸음만큼은 언제나 꼿꼿했다. 매일 첫차를 타고 나가 좌판이라도 벌어야 겨우 손주들 간식거리라도 사줄 수 있다며,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류장을 지켰다. 곁에는 늘 김민준이라는 청년이 서 있었다. 말끔하게 다려 입은 정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