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 오는 날
회색빛 도시의 숨 막히는 공기는 오늘도 여전했다. 끝없이 늘어선 빌딩들은 저마다의 무게로 지훈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고, 그의 발걸음은 퇴근길 인파 속에서 무표정하게 섞여 들어갔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던 순간, 후두둑. 차가운 것이 이마에 떨어졌다. 하나, 둘, 그리고 이내 세차게 쏟아지는 비였다. “아, 이런.” 가방을 뒤져봤지만, 늘 그렇듯 우산은 없었다. 처마 밑으로 잠시 몸을 피했지만,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삼킬 듯한 비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그때였다.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반쯤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 혹시 우산 없으시면… 같이 쓰실래요?” 고개를 돌리자, 아이보리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작은 하늘색 우산을 내밀고 서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