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라일락이 피던 날
창문을 열면 훅, 하고 끼쳐오는 초여름의 냄새가 있다. 그 속에는 분명 라일락의 달콤한 향도 섞여 있을 터였다. 한때 음악 교사였던 정연우는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몇 해 전, 사소하지만 깊은 상처를 준 어떤 사건 이후로 그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극도로 힘겨워졌다. 대인기피증. 병원에서 내려준 진단명은 그의 삶을 작은 방 안에 가두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의 유일한 외출은 인적이 드문 시간을 골라 동네 공원을 잠시 걷는 것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는 공원 한쪽에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 나무 근처 벤치에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발견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한 여자를. 연보랏빛 원피스가 라일락 꽃잎과 닮아 보였다. 여자의 이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