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씨는 주말 아침마다 창밖으로 그들을 보는 게 영 마뜩잖았다. 알록달록한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는 건 좋은데, 왜 허리를 숙여가며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단 말인가.
한 손엔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들고 땀 흘리는 모습은 어딘지 유별나 보였다. ‘참, 별난 사람들도 다 있어. 자기 집 앞이나 잘 쓸 것이지.’ 그는 혀를 차며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 ‘별난 사람들’의 중심에는 늘 밝게 웃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나중에 동네 반상회에서 얼굴을 익히고 보니, 아랫집에 사는 김수진 씨였다. 그녀는 박 씨에게도 싹싹하게 인사하며 주말 아침 ‘줍깅 클럽’에 한번 나와보시라고 권했다.
“에이, 나는 무릎이 안 좋아서 뛰지도 못해.”
박 씨는 손사래를 쳤다. 혼자 사는 그에게 주말 아침은 늦잠을 자거나,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굳이 사서 고생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무심코 나선 산책길에서 박 씨는 자기가 늘 앉던 벤치 옆에 버려진 캔과 과자 봉지를 발견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저 멀리서 웃으며 쓰레기를 줍는 수진 씨와 클럽 회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기가 생겼다. ‘에잇, 저것들만 내가 주워버리자.’ 그는 쭈그려 앉아 캔과 봉지를 주워 근처 쓰레기통에 넣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벤치 주변이 환해진 것 같았다.
그다음 주, 박 씨는 자기도 모르게 약속 장소인 공원 입구로 향했다. 어색하게 서 있는 그를 발견한 수진 씨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집게와 봉지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아버님! 그냥 천천히 걸으시면서 보이는 것만 주우시면 돼요.”
첫 줍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허리를 숙이는 것도, 낯선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도 어색했다. 하지만 30분쯤 지났을까. 봉투 안에 쌓이는 쓰레기만큼이나 마음속 찌꺼기도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말없이 걷기만 하던 박 씨에게 은퇴한 교장 선생님이 말을 걸었고, 아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가 시원한 물을 건넸다. 그들은 쓰레기 이야기 대신,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나 동네 빵집의 신메뉴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달이 지나자, 박 씨는 토요일 아침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클럽 회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우리가 깨끗하게 만든 길을 돌아보며 느끼는 보람은 텔레비전 시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함을 주었다.
늘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도 조금씩 미소가 번졌다. 퀴퀴한 냄새가 나던 동네 개천가는 이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칠 만큼 깨끗해졌고, 공원 벤치 주변에는 더 이상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변화는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진짜 사건은 동네 벚꽃 축제가 끝난 다음 날 터졌다. 축제의 중심지였던 중앙공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일회용품, 찢어진 돗자리가 발 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다. 아침 일찍 모인 줍깅 클럽 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걸… 우리가 다 어떻게 치우죠?”
젊은 학생 회원의 말에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평소의 몇 배는 되는 쓰레기 양에 다들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늘 뒤에서 묵묵히 걷기만 하던 박 씨가 앞으로 나섰다.
“합시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우리가 지금까지 주운 게 어디 쓰레기뿐이었소? 우리가 살아갈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고,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었지."
박 씨는 말없이 집게를 들고 가장 더러운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진심 어린 말과 행동에 머뭇거리던 회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이건 그냥 쓰레기 더미가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에 남겨진 상처였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집게를 들고 흩어졌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 광경을 창밖으로 지켜보던 아파트 주민 한두 명이 장갑을 끼고 내려왔다. 매일 아침 그들을 유심히 보던 편의점 사장님이 커다란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들고 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줍깅 클럽’의 작은 날갯짓이 동네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태풍을 만든 것이다.
그날 오후, 공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박 씨는 수진 씨가 건네는 시원한 식혜를 받아 마시며 깨끗해진 공원을 둘러보았다. 함께 땀 흘리는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세상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이 동네는 이제 그의 집이자, 그의 자랑스러운 공동체였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 이타주의와 따뜻한 빛 효과 (Altruism & Warm-glow Giving): 멤버들의 '줍깅' 활동은 환경을 보호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명백한 이타적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보람'과 '충만함'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따뜻한 빛 효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행을 함으로써 행위자 스스로가 얻는 긍정적인 감정적 보상(따뜻한 빛)이 그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는 현상입니다. 박 씨가 처음에는 쓰레기 하나를 줍는 작은 행위에서 시작해 점차 활동 전체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이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 집단 응집력과 공유된 정체성 (Group Cohesion & Shared Identity): '줍깅 클럽'은 처음에는 공통의 활동을 하는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했지만, 함께 땀 흘리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강한 '집단 응집력'을 형성합니다. 특히 '벚꽃 축제 쓰레기 대청소'라는 공동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경험은 "우리는 동네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는 강력한 '공유된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은 집단의 정체성으로 확장되며, 이는 박 씨가 "우리가 지금까지 주운 게..."라며 '나'가 아닌 '우리'를 주어로 말하는 데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 자기 효능감과 공동체 효능감 (Self-Efficacy & Collective Efficacy): 박 씨를 비롯한 멤버들은 자신들의 작은 실천(줍깅)이 동네를 깨끗하게 만드는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보며 '자기 효능감(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얻습니다. 이는 "나의 행동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 신념으로 이어집니다. 축제 후의 엄청난 양의 쓰레기 앞에서, 박 씨의 연설과 뒤이은 주민들의 자발적 동참은 이 효능감을 '공동체 효능감(집단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공유된 믿음)'으로 승화시킵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과업을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해내면서, 그들은 더 큰 연대감과 집단적 힘을 체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