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샤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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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2팀의 공기는 늘 건조했다. 타자 소리와 서류 넘기는 소리, 그리고 가끔 들리는 업무 관련 용건이 전부였다. 우리는 서로의 실력은 인정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회색 파티션처럼 우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의 한가운데쯤, 나 이대리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내 할 일을 했고, 누구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 건조한 사막에 돌멩이 하나가 날아든 것은 새로운 강 팀장님이 부임하면서부터였다. 활기 넘치는 그녀는 회의 첫날, 우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칭찬 샤워’ 프로젝트.

 

“매주 금요일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주인공이 될 겁니다. 나머지 팀원들은 그 주인공에게 일주일간 관찰한 장점이나 고마웠던 점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일종의 긍정 에너지 샤워죠!”

 

팀원들의 얼굴에 ‘이게 무슨 시간 낭비람’ 하는 표정이 스쳐 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낯간지러운 말을 억지로 쥐어짜야 하는 금요일 오후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첫 번째 칭찬 샤워는 예상대로 재앙에 가까웠다. 주인공이 된 박 과장님 앞에서 사람들은 “보고서가 깔끔합니다”, “항상 일찍 출근하시네요” 같은 영혼 없는 칭찬을 뱉어냈다. 마치 숙제를 검사받는 학생들 같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땀만 뻘뻘 흘리다 “늘… 열심히 하십니다”라는 바보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몇 주간 어색한 금요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앉아 있었다. 역시나 “지각 안 해서 성실해요”, “목소리가 차분해서 좋아요” 같은 의례적인 말들이 오갔다. ‘그래, 역시 나는 별 특징 없는 사람이구나.’ 체념하려던 순간이었다.

 

“저는… 이대리 님께 정말 감사한 게 있어요.”

 

입을 연 사람은 가장 조용하던 신입사원이었다.

 

“지난주에 제가 클라이언트한테 보낼 자료에 큰 실수를 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이대리 님께서 밤늦게까지 남아서 다 수정해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큰일 치를 뻔한 걸 막았어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하셔서… 저만 알고 있었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아준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기분 나쁜 열기는 아니었다. 심장이 따뜻한 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칭찬 샤워’는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형식적인 칭찬을 하지 않았다. 대신, 동료의 아주 작은 노력과 숨겨진 배려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김대리 님, 어제 제가 힘들어 보인다고 커피 사주셔서 감동이었어요.”

“팀장님, 저희가 놓친 부분까지 꼼꼼하게 다시 봐주셔서 프로젝트가 더 완벽해졌어요.”

 

우리는 서로가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했고, 회색 파티션 너머의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진짜 기적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이틀 앞두고, 우리 팀이 몇 달간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데이터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됐다. 사무실은 얼어붙었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원망과 책임 전가가 공기 중에 떠다녔다. 강 팀장님은 창백해진 얼굴로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하는 절망의 순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내 목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망연자실한 팀장님을 보며 말했다.

 

“이거 누구 한 사람 잘못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리 다시 하면 돼요. 지금까지 팀장님이 저희 얼마나 믿어주셨는데요. 저희도 팀장님 믿어요.”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옆자리의 박 과장님이 입을 열었다.

 

“맞아. 신입 씨가 며칠 밤새우면서 자료 조사해온 거, 내가 다 봤어. 절대 네 탓 아니야.”
“김대리는 클라이언트 설득하느라 목이 다 쉬었잖아.”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비난이 아닌, 서로의 노력을 알아주는 격려의 장으로 변해 있었다.

 

"칭찬이라는 게, 잘한 일을 들추는 게 아니라, 힘든 시간 속에서도 애쓰는 마음을 알아주는 거더라고요."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서로에게 가장 절실했던 ‘칭찬 샤워’를 해주고 있었다. 그 말들은 마법처럼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그날 밤을 새워 함께 오류를 수정했고, 기적처럼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마케팅 2팀은 회사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웃음이 많은 팀으로 소문났다. 우리는 더 이상 금요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서로를 향한 따뜻한 발견과 진심 어린 격려로 가득 차 있다. ‘칭찬 샤워’는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건조한 우리 마음에 내린 단비였고, 서로를 진정한 ‘우리’로 만들어준 기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1. 피그말리온 효과 (Pygmalion Effect): 이 소설은 긍정적 기대와 관심이 개인의 행동과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피그말리온 효과의 훌륭한 예시입니다. 처음에는 무관심과 낮은 기대 속에서 위축되었던 이대리는, 신입사원의 진심 어린 칭찬을 통해 '자신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긍정적 기대(칭찬)는 그의 자존감을 높이고, 위기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팀을 격려하는 등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잠재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합니다.
  2. 조하리의 창 (Johari Window): '칭찬 샤워' 프로젝트는 팀원들 간 '조하리의 창'을 긍정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은 자신과 타인이 아는 정보에 따라 대인관계 영역을 4가지(열린 창, 보이지 않는 창, 숨겨진 창, 미지의 창)로 나눕니다. 칭찬을 통해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나의 장점(보이지 않는 창, Blind Spot)'을 알게 되고(예: 이대리의 배려심), 칭찬을 주고받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나는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나(숨겨진 창, Hidden Area)'를 더 편안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공유하는 '열린 창(Open Area)'이 넓어지면서 상호 이해가 깊어지고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3. 사회적 정체성 이론 (Social Identity Theory): 프로젝트 초기, 팀원들은 '나'라는 개인적 정체성으로 서로를 대했습니다. 하지만 '칭찬 샤워'라는 공동의 과업과 긍정적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마케팅 2팀원'이라는 '우리(in-group)'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프레젠테이션 위기 상황에서 극대화됩니다. 팀원들은 개인을 비난하는 대신 '우리'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감싸 안습니다. 이는 개인 간의 갈등을 '우리 팀 vs 문제 상황'이라는 집단 간의 대결 구도로 전환시키며, 팀의 응집력과 협동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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