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던 날, 고양이가 사라진 그 밤

다섯 해를 함께한 두부, 새 보금자리로 이사하던 날
연주는 다섯 해 동안 한 몸처럼 붙어 지낸 고양이 두부와 함께, 드디어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날 아침을 맞았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온 지난 몇 년, 반려동물을 받아주는 전셋집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까마득한지는 발품을 팔아 본 사람만 안다며, 연주는 몇 달을 돌고 돌아 겨우 이 집을 찾아낸 참이었다. 두부는 유난히 좁고 어두운 틈을 좋아해서 책장 뒤나 서랍 사이처럼 몸 하나 겨우 들어갈 공간에 쏙 들어가 몇 시간이나 나오지 않는 버릇이 있었는데, 짐을 싸다가 두부가 가장 좋아하는 낡은 방석을 발견했을 때는 버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삿짐 상자 맨 위에 슬쩍 올려 두었다. 모서리가 다 닳고 색도 바랜 방석이었지만, 그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자는 두부의 모습이 떠올라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두부야, 이제 진짜 큰 집에서 살자. 알겠지?"

트럭 문이 열린 순간, 고양이가 사라졌다
트럭이 새 집 앞에 도착하고 짐을 내리는 작업이 시작되자, 좁은 계단 입구에 놓인 낡은 화분이 통로를 막고 있었다. 연주는 짐을 나르다 말고 얼른 화분을 옆으로 옮겨주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이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꽈당할 뻔했지" 하며 허허 웃었지만, 연주는 정신없이 짐을 나르느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시 트럭으로 뛰어갔다.
"어, 저기 캐리어 문이 열려 있는데요?"
이삿짐 기사의 그 한마디에 연주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분명히 닫아 두었다고 생각한 캐리어 문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안에는 두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부야! 두부야, 어디 있어!"
연주는 짐 사이를 허둥지둥 뒤지고 트럭 밑과 계단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지만 어디에도 두부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 끝까지 뛰어가 봐도 작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도록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되돌릴 곳도 없었다는 게 더 막막했다. 전셋집은 이미 다음 세입자에게 넘겨졌고, 새 집은 내일 오후부터 도배팀이 들어오기로 예정돼 있어 짐을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옆집 미선 할머니, 낯선 이웃에서 가이드가 되다
그때 아까 화분을 옮겨준 할머니가 다시 골목으로 나와 연주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그녀의 이름은 미선이었고, 이 골목에서만 삼십 년 넘게 살며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 준 사람이었다.
"아까 화분 옮겨준 아가씨 맞지? 왜 그렇게 울상이야?"
"저희... 고양이가 없어졌어요. 캐리어 문이 열려 있었나 봐요."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찾아보자. 이런 애들은 멀리 안 가."

방석 하나로 시작하는 계획
미선은 연주의 손에 들려 있던 상자 더미를 훑어보다가, 맨 위에 올려진 낡은 방석을 가리켰다. 그러곤 그 방석을 현관 앞 계단에 깔아 두고 건물 입구 불을 모두 끈 다음, 멀찍이서 조용히 기다리자고 했다.
고양이는 큰 소리로 부르면 더 깊이 숨는 법이라 다그치지 말고 익숙한 냄새를 믿어야 한다
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거기에 더해 골목 어귀 다른 집들에도 혹시 낯선 고양이를 보면 알려달라고 미리 말해두자고 덧붙였다.

오늘 밤을 넘기면 안 된다
미선은 시계를 보며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내일 낮부터 도배팀이 몰려와 복도가 소란스러워지면 두부가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못 찾으면 내일은 더 힘들어져. 지금 바로 움직이자."
연주는 떨리는 손으로 방석을 계단 한쪽에 가만히 내려놓고 건물 입구와 복도 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단 아래 어둑한 그늘에 나란히 앉아 숨을 죽인 채 기다리기 시작했다.

비 내린 밤, 안 나타난 두부와 터진 서운함
자정이 다가올 무렵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석은 금세 젖어 들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작은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연주는 점점 조급해졌고, 자신도 모르게 옆에 앉은 미선에게 날 선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할머니, 이거 진짜 맞는 방법이에요? 비까지 오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나도 확신은 없어. 근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 더 놀라게 하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잖아
."
그 말에 연주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자기가 지금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결국 미선은 자정이 넘도록 비를 맞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남았다.

책장 뒤에서 들려온 울음소리
다음 날 아침, 연주는 뜬눈으로 밤을 보낸 얼굴로 새 집 거실에 쌓인 상자들을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어차피 도배팀이 오기 전에 짐이라도 정리해 둬야 했기에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는데, 책장을 세우려고 뒤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상자와 벽 틈 사이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두부야...?"
연주가 조심스레 책장을 당겨 젖히자, 틈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던 두부가 커다란 눈으로 깜빡거리며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트럭에서 뛰쳐나간 게 아니라 그때 열린 캐리어 틈으로 기어 나와 짐 속에 숨어든 채, 밤새 바깥 골목이 아니라 바로 이 집 안에 함께 실려 와 있었던 것이다. 연주는 울컥 목이 메어 두부를 와락 끌어안았고, 밤새 골목을 뒤지고 다닌 수고가 허탈해 웃음이 터지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연주는 곧장 미선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는데, 전날 밤 쏘아붙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려 사과할 말을 이것저것 준비해 왔지만 미선의 얼굴을 보자마자 목이 메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 어젯밤에 제가 함부로 말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두부 찾았어요. 책장 뒤에 숨어 있었대요."
미선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가 허허 웃으며 연주의 등을 토닥였다.
"거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니까. 그나저나 그 녀석, 트럭 타고 몰래 이사까지 다 했네. 허, 참, 요즘 고양이들은 집도 골라서 들어가나 봐."
"할머니 얼굴, 제가 한번 그려드려도 될까요? 수채화로요."
연주는 웃음 섞인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는 말 대신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밝히고 미선의 얼굴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미선은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면서도 방긋 웃었고, 며칠 뒤 완성된 그림을 받아들고는 한참 들여다보더니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여 두었다. 그날 밤, 연주는 두부를 안고 창가에 앉아 낡은 방석을 무릎 위에 깔아주었다. 비에 젖어 눅눅해졌던 방석은 어느새 보송하게 말라 있었고, 두부는 그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
되갚음의 법칙(상호성)
연주가 먼저 화분을 옮겨준 작은 친절이 나중에 미선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돌아왔다.
작은 선의가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으로 되돌아오는 상호성 심리가 이야기 전체를 받치고 있다.
확증편향
연주와 미선 모두 고양이가 밖으로 나갔다는 첫 가정에 사로잡혀 밤새 골목 바깥만 뒤졌다.
바로 눈앞의 이삿짐 상자 속은 들여다볼 생각을 못 한 것은, 처음 세운 가설에 맞는 증거만 찾으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전위된 분노
비 오는 밤 연주가 미선에게 '이게 맞는 방법이냐'며 쏘아붙인 장면은,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돌린 것에 가깝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
미선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잖아'라고 답한 태도는, 확실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리치며 움직이기보다 침착하게 기다리는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안도 후의 보상 행동
두부를 찾은 뒤 연주가 곧장 미선에게 달려가 사과하고 그림을 그려 선물하려 한 행동은, 위기 상황에서 받은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즉시 갚으려는 강한 보상 심리를 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