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예고 열흘 전, 귀향길에서 만난 옆집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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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고 열흘 전, 귀향길에서 만난 옆집 상담사

집을 비우라는 문자 한 통, 12년 만의 귀향

집을 비우라는 문자 한 통에, 나는 12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완행열차에 올랐다. 윤지섭, 서른아홉, 서울에서 조명 디자이너로 일하다 공황장애 때문에 반년째 일을 쉬고 있는 처지였다.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쿵쿵 뛰었는데, 그게 공황 때문인지 아니면 곧 마주할 바다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선창리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장례식 날 형 지원과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크게 다퉜고, 그날 뱉은 말들이 아직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형은 그 길로 원양어선을 타러 떠났고, 나는 서울로 올라와 다시는 안 갈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구청에서 보낸 공문이 발목을 잡았다. 도로 확장 공사로 선창리 바닷가 집들이 수용 대상이 됐고, 보름 안에 유품을 정리하고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명의자는 형이었지만 전화가 닿지 않았고, 결국 집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역에 내려 비탈길을 오르는 동안, 바다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쳐왔다. 어릴 적 아버지와 형과 함께 걷던 그 길인데, 발걸음은 설레기보다 무거웠다. 대문 앞에 선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손잡이를 잡고 서 있어야 했다.

형과 연락이 끊긴 채, 혼자 맞은 난관

집 문을 열자 먼지 쌓인 마루가 나를 맞았다. 아버지가 쓰던 라디오와 낡은 책상이 그대로였고, 벽에는 형과 내가 어릴 때 찍은 사진이 삐뚜름하게 걸려 있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울컥 뭔가 올라와서, 나는 괜히 코를 훔치며 딴청을 부렸다.

이웃집 할아버지 말로는 형이 몇 달째 배를 타고 나가 있고, 선박회사에도 연락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수용위원회 담당자는 전화로 딱딱하게 말했다.

"보름 안에 동의서 안 내시면 보상금 산정이 자동으로 최저 등급으로 넘어갑니다. 저희도 더는 미뤄드릴 수가 없어요."

전화를 끊고 나니 손이 떨렸다. 형한테 화가 나는 건지, 내 자신한테 화가 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결국 나는 형의 번호로 음성메시지를 남겼는데, 하필 그날은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형, 집이 없어진대. 근데 형은 또 연락도 안 되고, 서명도 안 하고.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아버지 집까지 이렇게 내버려 두는 거야."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전송된 뒤였다. 그날 밤 나는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과연 혼자서 이 집을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해졌다. 밖에서는 늦가을 바람이 창문을 철썩철썩 때렸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 만옥 씨를 만나다

다음 날 아침, 마당을 쓸고 있던 낯선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며 짐 정리를 하던 그녀는, 허둥지둥 상자를 옮기다가 그만 철퍼덕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서, 민망해진 그녀와 서로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게 됐다.

"아이고, 오랜만에 웃으시네요. 저는 김만옥이라고 해요. 이번에 구청 재개발 보상 상담 일로 여기 발령 받아서 들어왔어요."

그녀는 원래 오래 일하던 공무원이었는데,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선창리 수용 지역 주민들을 돕는 상담 업무를 맡아 내려왔다고 했다. 마침 비어 있던 옆집을 임시 숙소로 쓰게 됐다는 거였다. 나는 솔직히 처음엔 이 동네 일에 별 관심 없을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그 짐작은 금방 틀렸다.

"윤지섭 씨 집도 이번 수용 대상 맞죠? 형님 명의로 되어 있던데, 연락이 안 된다고 들었어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 사람이 벌써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또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는데, 말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래 쌓아뒀던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만옥 씨가 내놓은 세 단계 계획

만옥 씨는 커피를 타와 식탁 위에 서류 몇 장을 펼쳐 놓았다. 그녀의 말투는 단호하면서도 다정했는데, 오랜 세월 민원을 상대한 사람 특유의 느긋함이 묻어 있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먼저 제가 기한 연장 신청서를 넣어볼게요. 형님이 원양어선을 탄 건 공무상 불가피한 사유로 인정될 여지가 있어요."

"그리고 선박회사에는 위성전화로 가족 긴급 연락을 요청하는 공식 절차가 있어요. 제가 아는 담당자한테 부탁해볼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집 안에 형님 명의 관련 서류나 도장 같은 게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있으면 지섭 씨가 대리로 서류를 준비할 수도 있으니까요."

세 가지였다. 서류 접수, 위성전화 연결, 유품 속 서류 찾기. 말로는 간단해 보였지만, 열흘이라는 시간 안에 세 가지를 다 해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빡빡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혼자 막막했던 어제보다는 뭔가 할 일이 생긴 게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서둘러 움직였지만, 첫 시도는 어긋났다

나는 바로 다음 날 구청에 가서 연장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형님 본인 확인이 없으면 접수가 안 돼요. 위임장에 지섭 씨 혼자 서명해서는 효력이 없거든요."

허탈하게 돌아오는 길에 만옥 씨한테 전화했더니, 선박회사 쪽에서도 위성전화 요청이 밀려 있어 사흘은 걸린다는 답이 왔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괜히 만옥 씨한테 짜증을 내버렸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시지. 열흘밖에 없는데 사흘을 그냥 날리면 어떡해요."

말을 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만옥 씨는 잠깐 말없이 나를 보더니, 화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지섭 씨,

지금 저한테 화난 거 아니잖아요. 형님한테 화난 거, 저한테 쏟아내는 거예요.

"

그 말에 귀 끝이 화끈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락방 바닥을 뒤지며 형 명의 서류라도 찾아보려 했는데, 거기서 뜻밖의 물건과 마주쳤다.

다락방에서 나온 등대 모형, 그리고 뒤집힌 진실

마루판 밑 작은 상자 안에, 나무로 깎은 등대 모형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형과 나를 위해 각각 하나씩 만들어 주셨던, 그 등대였다. 내 것은 서울 집 책장에 오래 모셔져 있었는데, 설마 형 것이 여기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먹먹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등대 모형 사진을 찍어 형에게 보냈다. 화난 음성메시지를 남긴 게 영 마음에 걸려서, 사진 밑에 짧은 문자도 덧붙였다. '형, 이거 아직 여기 있더라. 미안해, 아까 그 말은.' 보내고 나서 답이 올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전혀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낯선 목소리의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윤지섭 씨 맞으시죠? 여기 수협병원인데요, 형님이 지섭 씨한테 꼭 좀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형은 보름 전, 배 위에서 그물 작업 중 손가락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연락이 안 됐던 이유도, 서명을 못했던 이유도 다 거기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반쯉 정신이 나간 채로 병원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병원에서 다시 마주 앉은 형, 그리고 함께 지킨 열흘

병실 문을 열자 형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고, 얼굴은 몇 년 전보다 훌쩍 늙어 보였다. 12년 만의 재회였는데, 서로 어색하게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야, 너 그 등대 아직 갖고 있었어?"

형이 먼저 웃으며 물었다. 그 한마디에 쌓여 있던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나는 코끝이 찡해져서 괜히 창밖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형이 보낸 메시지 들었어. 나한테 화낸 거,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아버지 집 그렇게 두는 거, 나도 마음 편할 리가 없잖아."

형은 서명을 못한 게 손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 집을 정말 내놓는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자꾸 미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형도 나처럼 그 집을 떠나보내는 게 두려웠다는 걸 알았다.

다음 날 만옥 씨가 병원으로 직접 서류를 들고 왔다. 형이 손으로 서명하기 힘드니 지장을 찍는 방법으로 위임장을 완성했고, 연장 신청서도 함께 접수했다. 사흘 뒤, 최저 등급이 아니라 정상 보상 등급으로 결정이 났다는 통지가 왔다.

열흘째 되는 날, 형과 나는 빈집 마루에 나란히 앉아 등대 모형 두 개를 다시 상자에 담았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열린 창으로 찰랑찰랑 들어왔고, 나는 상자를 품에 안으며 처음으로 이 집을 웃으며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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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 행동

지섭이 아버지 장례식 이후 12년 동안 고향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것은, 다툼의 기억을 마주하기보다 아예 피해버리는 전형적인 회피 반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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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인(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지섭이 서류 접수 실패 후 만옥 씨에게 짜증을 낸 장면은, 실제 분노 대상인 형에게 쏟지 못한 감정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돌려버리는 심리를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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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에서 나오는 행동 교정

화난 음성메시지를 보낸 뒤 바로 사진과 사과 문자를 덧붙인 지섭의 모습은,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인식한 뒤 즉시 관계를 복구하려는 반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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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감정 전이

아버지가 만들어 준 등대 모형에 집착하는 두 형제의 모습은, 사람에게 직접 하지 못한 애정과 그리움을 물건에 옮겨 담는 심리를 보여줘요.

🧠

공동 경험을 통한 관계 재구성

병원에서 다시 만난 형제가 과거를 설명하기보다 등대 모형과 서류 정리라는 공동의 일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는 장면은, 대화보다 행동을 통해 관계가 복원되는 과정을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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