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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 온 옆집 할아버지, 떨리던 붓끝의 비밀새로 이사 온 날, 옆집에서 들려온 그 소리이사 온 지 나흘째 되던 날 오후, 장맛비가 양철 차양을 투둑투둑 두드렸고 서은은 흠뻑 젖은 종이박스를 품에 안고 계단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팔 년차 웹툰작가로 구독자 십이만 명을 모았던 연재작 '달빛정원'이 악플 테러로 멈춘 뒤로, 그녀는 펜을 쥐기만 하면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삼 년치 원고를 서랍 깊숙이 밀어넣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이 재개발 예정 골목 다세대주택 삼층으로 숨어들었지만, 짐 몇 개 옮기는 일조차 혼자선 버거웠다.그러다 손에 든 박스 손잡이가 뚝 끊어지며 그릇들이 와르르 쏟아졌고, 요란한 소리에 놀란 옆집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어허, 이 복도가 자네 혼자 쓰..
사직서를 접었다 폈다, 선생님이 준 질문 세 가지목차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여자 흔들리는 밤 우연히 만난 얼굴 선생님의 질문 종이 위의 다짐 메일을 쓰다 멈추다 새로운 교실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여자수아의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석 달째 접힌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A4 용지 한 장, 열두 줄짜리 짧은 글이었지만 그 무게는 매일 아침 가방을 다르게 느끼게 만들었다.종이 모서리는 이미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꺼냈다 다시 넣기를 서른 번쯤은 반복한 흔적이었다.마케팅팀 8년 차, 서른셋. 남들은 이제 자리 잡을 나이라고 했다.그런데 수아는 매일 아침 지하철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내리고 싶은 역을 지나쳤다.회사 근처 2호선 역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 정거장을 그냥 ..
미터기가 멈춘 자리에서목차마지막 손님 브레이크 밟은 기사님 문 앞에서 다시 만난 새벽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마지막 손님캐리어 두 개와 여권 한 장, 그리고삼 년째 삼키기만 한 말 한마디. 은수는 밤 11시 47분 골목 끝에서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열 시, 인천에서 밴쿠버로 뜨는 비행기 표 한 장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이민 가방 안주머니에는 언니 은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반으로 접힌 채 들어 있었다. 짐을 다 싸고도 어깨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새로 시작한다는 말이 사실은 도망친다는 말과 얼마나 닮았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엄마 장례식장에서 마주 본 뒤로 두 사람은 문자 한 통 주고받지 않았다. 이민을 결심한 것도 어쩌면 언니를 마주치지 않을 가장 먼 핑계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