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이 살던 그 집으로, 하필 내가 이사를 갔다
옛 연인이 살던 그 집으로, 하필 내가 이사를 갔다상자 마흔두 개상자에 마흔두 번째 번호를 적다가 손을 멈췄다.유성펜 뚜껑을 닫는 소리가 텅 빈 방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오 년을 살았던 반지하였다.곰팡이 자국을 가리려고 붙였던 벽지 무늬가 눈에 익었는데, 이제 그 벽지도 남의 것이 된다.재건축 통보를 받은 건 두 달 전이었다.집주인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문자 한 통으로 다음 달 말까지 비워달라고 통보했다.수아는 서른네 살이었다.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육 년째 마감과 씨름하며 이 동네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이 동네에서 태오와 만나고 헤어졌다는 사실은, 그날 아침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이사는 잘 돼가?"친구 은지의 전화였다.수아는 상자 테이프를 뜯다 말고 휴대폰을 어깨에 끼웠다."그냥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