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머무는 집
오래된 기차는 익숙한 풍경 사이를 더디게 흘렀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낮은 지붕들과 푸른 논밭은 수지가 떠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수지의 마음만이 잿빛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한때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담던 카메라는 가방 깊숙한 곳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꿈’이라 불렀던 그것은 빛바랜 사진처럼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서울에서의 삶은 치열했고, 그만큼 공허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왔는지 알 수 없게 된 어느 날, 수지는 모든 것을 멈췄다. 그리고 도망치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묻힌 고향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살지 않아 을씨년스러울 거라 예상했던 고향집은 의외로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고 있었다. 낡았지만 정갈한 마당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