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이 8년 만에 고른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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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이 8년 만에 고른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방'이다

방을 나가야 할 때, 사람은 무엇을 챙기는가

이사 전날 밤,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 필요 없는 물건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별 의미 없던 벽지 무늬를 눈에 새기듯 오래 바라본다. 창틀에 앉았던 각도, 방문이 삐걱대던 지점, 겨울이면 유독 차갑던 바닥 한구석까지 눈에 담는다.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다 말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도 있다. 사람은 떠나기 직전에야 자신이 머물던 공간을 가장 선명하게 본다. 살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떠날 때가 되면 갑자기 또렷해지는 셈이다. 김애란의 새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바로 그 순간,

공간과 이별하기 직전의 마음을 붙잡아

일곱 편의 이야기로 늘어놓는다.

전작 『바깥은 여름』을 낸 지 8년, 이번이 김애란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8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회사를 세 번쯤 옮길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전셋집을 두세 번 옮겨 다닐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 동안 작가가 붙들고 있던 질문이 이번 책에서는 유독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인물의 감정을 먼저 설명하는 대신, 그가 머물던 방과 그 방에 남은 흔적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야 사람을 이해하게 만든다. 설명 대신 관찰을 택한 셈이다. 이번 소설집을 읽고 나면, 그동안 읽어온 김애란의 문장들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일곱 개의 방, 일곱 개의 표정

수록작은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를 포함해 「홈 파티」 「좋은 이웃」 「레몬케이크」 「숲속 작은 집」 「이물감」 「빗방울처럼」까지 모두 일곱 편이다. 공간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묶여 있지만 그 결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방은 우아함을 뽐내고, 어떤 방은 곧 비워줘야 할 운명이고, 또 어떤 공간은 꿈과 생계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제목만 놓고 봐도 온도 차가 뚜렷하다. '홈 파티'와 '숲속 작은 집'이 주는 느낌이 다르고, '이물감'과 '빗방울처럼'이 주는 인상도 서로 어긋난다. 다만 「숲속 작은 집」 「이물감」 「빗방울처럼」, 그리고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까지 네 편은 아직 자세한 줄거리가 공개되지 않았다. 그 안을 직접 채워보는 몫은 독자에게 남겨두는 편이 낫겠다.

  • 홈 파티 — 집주인의 미감이 드러나는 우아한 공간,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 좋은 이웃 — 정성껏 가꿨지만 곧 비워야 할 전셋집,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 레몬케이크 — 회사를 관두고 모은 돈으로 연 책방, 꿈과 생계 사이의 하루
  • 숲속 작은 집 · 이물감 · 안녕이라 그랬어 · 빗방울처럼 — 아직 줄거리가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네 편

우아한 집 안의 균열 — 「홈 파티」

「홈 파티」의 무대는 집주인의 안목이 곳곳에 묻어나는 세련된 집이다. 조명 하나, 접시 하나에도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손님을 초대해 여는 파티는 본래 집주인의 삶을 가장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자리다. 그런데 그런 우아함일수록 아래에 깔린 균열이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기 마련이다. 잘 정돈된 삶의 표면 아래 무엇이 흔들리고 있는지를 공간의 디테일로 읽어내는 이 단편은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아무리 잘 꾸며진 집이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의 불안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 그 균열을 알아채는 순간, 독자는 이 집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떠나야 할 집을 가꾼다는 것 — 「좋은 이웃」

반대편에는 「좋은 이웃」이 있다. 정성껏 가꿔온 전셋집이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곧 비워줘야 한다. 벽에 못 하나 박는 것도 주인 눈치를 봐야 하고, 곰팡이가 슬어도 내 돈으로 고쳐야 할지 망설여지는 집이다. 내 것이 아닌 공간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떠나야 하는 순간의 감정은 한국에서 전세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다. 2022 오영수문학상을 받은 이 단편은

자본의 질서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품위

를 그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곧 떠나야 할 걸 알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방, 엄마, 그리고 하루 — 「레몬케이크」

「레몬케이크」의 주인공 기진은 회사를 그만두고 모은 돈을 털어 책방을 열었다. 매달 나가는 월세, 손님이 뜸한 평일 오후, 그럼에도 책장을 정리할 때 느껴지는 어떤 만족감. 책방은 오래 품어온 꿈을 실현한 자리이자, 동시에 매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 단편은 서울에 검사를 받으러 온 엄마와 함께 보내는 하루를 따라가며, 기진이 꿈과 생계 사이를 오가는 마음을 그려낸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몰랐던 종류의 피로가, 자기 이름을 건 공간을 지킬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 단편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책 한 권을 파는 일과 책방의 월세를 걱정하는 일은, 같은 공간 안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책방이라는 공간 하나에 한 사람의 선택과 불안, 그리고 가족의 시간이 겹쳐진다. 병원 진료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와 책방을 지키는 하루가 나란히 놓이면, 공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건이 된다. 엄마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과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같은 하루 안에서 흘러간다는 설정만으로도, 이 단편이 왜 책방을 무대로 골랐는지 짐작이 간다.

공간이 사람보다 많은 것을 말할 때

보통 소설은 인물의 감정을 먼저 따라가지만, 이 책은 순서를 바꾼다. 공간을 먼저 보여주고, 그 공간이 인물을 설명하게 만든다. 방의 구조, 가구의 배치,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되는 식이다. 집이 갖는 무게, 전세와 이사, 소유하지 못한 공간에 들이는 정성을 생각하면 이 설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뼈대에 가깝다. 방 한 칸이 바뀌면 그 안에서 오가는 대화의 온도도, 사람이 앉는 자리도 달라진다. 김애란은 그동안 사소해 보이는 순간에서 인물의 내면을 정교하게 길어 올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엔 그 정교함이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향했다는 점이 다르다. 인물이 아니라 벽과 창문이 먼저 말을 거는 소설이라니, 낯설면서도 반갑다.

한국에서 집은 유독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내 이름으로 등기되지 않은 방을 몇 년씩 가꾸고, 계약 갱신일이 다가오면 마음을 졸이는 경험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흔한 일상이다. 계약 갱신 통보 문자 하나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본 사람이라면, 이 책 속 인물들의 감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저녁 약속을 취소해본 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이 그 흔한 감정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소설 속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감정을 소설이 대신 말해줄 때, 독자는 위로받는다.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까

교보문고가 소설가 50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이 책은

올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소설 1위로 꼽혔다

. 다른 독자가 아니라 동료 작가들이 먼저 알아봤다는 뜻이다. 같은 업으로 매일 문장을 쓰고 고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첫손에 꼽았다는 사실은, 화제성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작 이후 8년이라는 공백도 예사롭지 않다. 그 긴 시간 벼려온 이야기가 '공간'이라는 하나의 렌즈로 수렴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소설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화제성만으로 소비되기엔, 담고 있는 결이 훨씬 촘촘하다.

작품 특징
홈 파티 우아한 공간 배경 ·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좋은 이웃 곧 비워야 할 전셋집 배경 · 2022 오영수문학상
레몬케이크 책방 배경 · 꿈과 생계 사이의 하루

핵심 요약

《안녕이라 그랬어》는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에 나온 김애란의 다섯 번째 소설집으로, 일곱 편 모두 '공간'을 중심에 둔다. 「홈 파티」는 2022 김승옥문학상, 「좋은 이웃」은 2022 오영수문학상을 받았고, 교보문고 소설가 50인 설문에서 올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소설 1위에 올랐다.

자주 묻는 질문

1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몇 편의 단편이 실려 있나요?

표제작을 포함해 총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홈 파티」 「좋은 이웃」 「레몬케이크」 「숲속 작은 집」 「이물감」 「안녕이라 그랬어」 「빗방울처럼」이다.

2

전작과 얼마 만에 나온 소설집인가요?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에 나온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3

어떤 상을 받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나요?

「홈 파티」는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좋은 이웃」은 2022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

4

이 책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는 무엇인가요?

일곱 편 모두 인물이 드나드는 방, 집, 책방 같은 공간을 중심에 두고, 그 공간에 깃든 삶의 흔적과 균열을 다룬다.

5

어떤 독자에게 특히 추천하나요?

전세나 이사를 겪어본 독자, 자신이 머물던 공간과 이별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특히 깊이 공감할 만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자기 방을 한 번 둘러보게 된다. 이 벽지, 이 창문, 이 냄새를 언젠가 떠나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기억하려 할까. 짐을 다 뺀 텅 빈 방에 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보는 그 순간을, 이 책은 미리 상상하게 만든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 질문 하나를 남기고 조용히 안녕을 고한다. 그 안녕이 슬픈 인사인지, 홀가분한 인사인지는 각자의 방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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