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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째 연체 중인 책, 노인은 왜 이제야 돌려주러 왔을까목차종이봉투 하나 묻지 않은 이유 카운터 너머의 사람 지민이 내민 것 세 장을 넘기는 용기 새로 받은 대출 카드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종이봉투 하나박용수, 일흔셋. 인쇄소를 마흔 해 넘게 운영하다 재작년에 문을 닫았다. 손끝에는 아직도 잉크 냄새가 배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이사를 앞두고 서재 서랍을 정리하던 손녀 서연이 누렇게 바랜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봉투 안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표지 귀퉁이는 다 닳아 있었고, 안쪽에는 낯선 도장이 찍혀 있었다. "용산구립도서관"이라는 글자 옆에 반납일이 적혀 있었는데, 날짜를 보고 서연은 눈을 의심했다.1986년 3월 12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마흔 해 전이었다.묻지 않은 이유서연이 봉투를 들..
빵집 셔터 내리기 전날, 스무 살이 문을 두드렸다목차마흔 해 동안 반죽만 주무른 손 월세가 두 배로 뛴다는 통보 카메라를 든 스무 살 손님 다은이 내민 세 가지 첫 촬영, 조용한 반응 이야기를 빼먹고 있었다 골목에 줄이 서던 아침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마흔 해 동안 반죽만 주무른 손재만은 올해 예순두 살이다. 새벽 네 시, 아무도 없는 골목에 제일 먼저 불을 켜는 사람이 그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빵집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밀가루가 낀 지도 벌써 마흔 해가 다 됐다.가게 이름은 미소당. 간판 글씨는 재만이 젊었을 때 직접 붓으로 썼다. 페인트가 벗겨져 두 번을 덧칠했지만 글씨체는 그대로 두었다. 처음 쓴 그 손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단팥빵 하나에 천오백 원. 삼십 년 전 가격에서 겨우 오백 원..
냄비 앞에서 운 남자, 딸의 젓가락이 멈췄다목차탄내가 난 세 번의 시도 시장 골목, 순자 할머니 손으로 적은 레시피 노트 네 번째 냄비, 그리고 한 통의 전화 생일상 위에서 멈춘 젓가락 자주 묻는 질문냄비 뚜껑을 열자 탄내가 훅 끼쳤다. 준영은 가스불도 끄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실패였다. 딸의 생일은 사흘 뒤였다.탄내가 난 세 번의 시도아내가 떠난 지 일 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그 후로 준영의 부엌은 거의 닫혀 있었다. 열일곱 살 하은과는 요즘 말을 섞는 일도 드물었다. 그나마 좋아하던 음식이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였다는 걸, 준영은 최근에야 냉장고에 붙은 메모지에서 알았다.문제는 레시피가 없다는 거였다. 아내는 계량 없이, 손짐작으로만 요리하던 사람이었다. 준영이 아는..
새벽안개가 짙게 드리운 서울 변두리 시장 골목길.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낡은 함석지붕 아래 ‘행복 빵집’의 작은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70대 후반의 김복순 할머니는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화덕 앞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주름진 손은 쉴 새 없이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고, 달콤한 팥 앙금을 듬뿍 넣어 동글납작한 빵 모양을 빚어냈다. 할머니의 빵집은 시장 골목길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나무 간판은 비바람에 색이 바랬지만, ‘행복 빵집’이라는 정겨운 글씨는 여전히 따뜻하게 빛났다. 할머니가 매일 새벽 굽는 단팥빵 냄새는 시장 골목길을 가득 채우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향긋한 자명종과 같았다. “할머니, 오늘도 빵 냄새가 기가 막히네!” 생선 좌판을 정리하던 박 씨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