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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통보 받던 날, 옆집 아저씨가 화단 앞으로 부른 이유목차해고 통지서를 받은 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옆집 아저씨 화단 앞, 그가 건넨 낯선 제안 낡은 수첩 속 세 줄의 계획 망설임 끝에 내디딘 첫걸음 포기하려던 순간, 다시 손 내민 이웃 화단에서 다시 켜진 불빛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해고 통지서를 받은 화요일 아침화요일 오전 열 시 십칠 분, 태오의 이메일함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제목은 짧았다. '면담 요청'. 발신인은 인사팀장이었다.14년을 다닌 회사였다. 서른아홉 살, 대리에서 과장이 되고 다시 팀장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 그 사이 회사는 두 번 이사를 했고, 태오는 세 번 책상을 옮겼다.회의실 문을 닫고 나온 태오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퇴직 위로금 안내서였다. ..
사직서를 접었다 폈다, 선생님이 준 질문 세 가지목차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여자 흔들리는 밤 우연히 만난 얼굴 선생님의 질문 종이 위의 다짐 메일을 쓰다 멈추다 새로운 교실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여자수아의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석 달째 접힌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A4 용지 한 장, 열두 줄짜리 짧은 글이었지만 그 무게는 매일 아침 가방을 다르게 느끼게 만들었다.종이 모서리는 이미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꺼냈다 다시 넣기를 서른 번쯤은 반복한 흔적이었다.마케팅팀 8년 차, 서른셋. 남들은 이제 자리 잡을 나이라고 했다.그런데 수아는 매일 아침 지하철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내리고 싶은 역을 지나쳤다.회사 근처 2호선 역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 정거장을 그냥 ..
미터기가 멈춘 자리에서목차마지막 손님 브레이크 밟은 기사님 문 앞에서 다시 만난 새벽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마지막 손님캐리어 두 개와 여권 한 장, 그리고삼 년째 삼키기만 한 말 한마디. 은수는 밤 11시 47분 골목 끝에서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열 시, 인천에서 밴쿠버로 뜨는 비행기 표 한 장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이민 가방 안주머니에는 언니 은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반으로 접힌 채 들어 있었다. 짐을 다 싸고도 어깨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새로 시작한다는 말이 사실은 도망친다는 말과 얼마나 닮았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엄마 장례식장에서 마주 본 뒤로 두 사람은 문자 한 통 주고받지 않았다. 이민을 결심한 것도 어쩌면 언니를 마주치지 않을 가장 먼 핑계였는지 모른다..
화분 밑에 숨겨둔 열쇠목차열쇠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삼천만 원짜리 침묵 다락에서 나온 상자 이웃집 박씨 할머니 못 보낸 편지 발걸음을 돌리기까지 하마터면 놓칠 뻔한 것 문 앞에서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열쇠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현관 화분 밑, 정은은 손끝으로 흙을 헤집었다. 열쇠는 십이 년 전 그대로 거기 있었다. 녹이 슬어 붉은 자국이 손가락에 묻어났다.어머니가 요양원으로 옮긴 지 두 달째였다. 삼 남매 중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정은뿐이었다. 오빠는 지방 발령 중이었고, 언니 정희는 애초에 연락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낡은 나무 대문을 밀자 삐걱, 오래된 경첩 소리가 골목까지 퍼졌다. 마당의 감나무는 정은의 키를 훌쩍 넘어 자라 있었다. 저 나무를 심을 때 정은은 아직 초등학생이었다.삼..
40년째 연체 중인 책, 노인은 왜 이제야 돌려주러 왔을까목차종이봉투 하나 묻지 않은 이유 카운터 너머의 사람 지민이 내민 것 세 장을 넘기는 용기 새로 받은 대출 카드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종이봉투 하나박용수, 일흔셋. 인쇄소를 마흔 해 넘게 운영하다 재작년에 문을 닫았다. 손끝에는 아직도 잉크 냄새가 배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이사를 앞두고 서재 서랍을 정리하던 손녀 서연이 누렇게 바랜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봉투 안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표지 귀퉁이는 다 닳아 있었고, 안쪽에는 낯선 도장이 찍혀 있었다. "용산구립도서관"이라는 글자 옆에 반납일이 적혀 있었는데, 날짜를 보고 서연은 눈을 의심했다.1986년 3월 12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마흔 해 전이었다.묻지 않은 이유서연이 봉투를 들..
빵집 셔터 내리기 전날, 스무 살이 문을 두드렸다목차마흔 해 동안 반죽만 주무른 손 월세가 두 배로 뛴다는 통보 카메라를 든 스무 살 손님 다은이 내민 세 가지 첫 촬영, 조용한 반응 이야기를 빼먹고 있었다 골목에 줄이 서던 아침 이 이야기 속 마음 읽기마흔 해 동안 반죽만 주무른 손재만은 올해 예순두 살이다. 새벽 네 시, 아무도 없는 골목에 제일 먼저 불을 켜는 사람이 그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빵집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밀가루가 낀 지도 벌써 마흔 해가 다 됐다.가게 이름은 미소당. 간판 글씨는 재만이 젊었을 때 직접 붓으로 썼다. 페인트가 벗겨져 두 번을 덧칠했지만 글씨체는 그대로 두었다. 처음 쓴 그 손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단팥빵 하나에 천오백 원. 삼십 년 전 가격에서 겨우 오백 원..